중앙­지방정부/재정부담 싸고 신경전(신경제쟁점: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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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책사업 일부 지방이전/중앙/예산 안주고 「일」만 늘려/지방
건설부는 지난주 광역상수도 건설사업비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부담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역상수도 사업은 이제까지 중앙정부 예산으로 추진됐으나 소요예산(94∼96년 연평균 4천4백70억원 예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큰 폭으로 늘어남에 따라 내년부터 사업비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얼핏보면 간단한 내용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예산의 사용 주체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물밑 신경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정부는 국책사업의 일부를 지방정부에 이전,여기서 생기는 여력을 중앙정부 주도아래 도로·항만건설 등 굵직굵직한 일에 투자하겠다는 것이고 이에대해 지방정부는 그렇지않아도 할 일이 많은데 『예산은 안주고 일거리만 떠넘기느냐』는 볼멘 소리를 내고있다.
한정된 재원을 놓고 이를 누가,어디에 사용하느냐는 방법론에 대한 중앙정부·지방정부간 논란은 최근 신경제5개년계획 입안과정에서 더 큰 목소리로 증폭되고 있다.
경제기획원은 지방교부금·인건비·방위비 등 경직성 경비가 전체예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90년 이후 지방정부 재정이 중앙정부 재정보다 갈수록 커지고 있어 신경제5개년계획의 중요과제인 사회간접자본(SOC) 시설확충·기술개발·산업구조 조정 등의 추진에 필요한 효율적 재원배분을 위해 재정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올해 예산 38조5백억원(일반회계 기준) 가운데 교부금 10조6천억원(지방 및 교육),방위비 9조6천억원,인건비 5조4천억원을 빼면 중앙정부로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할 처지라는 것이다.
이와관련,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재정개혁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방위비·인건비에서는 줄이는데 한계가 있기때문에 교부금을 줄여서라도 『국가 미래에 대비하는 분야에 집중배분 하겠다』는 것이 기획원 생각이다.
기획원이 이처럼 교부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지방재정이 90년 이후 갈수록 늘고있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은 89년의 경우 15조6천6백억원으로 중앙재정(19조9천3백억원) 보다 규모가 작았으나 이후 교부율 상향조정(지방 및 교육교부금을 합쳐 내국세의 25.07%) 및 양여금제도 도입,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인한 자체 세수증가 등으로 올해 중앙재정(36조6천억원)을 훨씬 앞지르는 41조6천2백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획원은 장기적으로는 「지방재정 조정제도」를 도입,교부율 인하조정 등을 통해 늘어나는 지방재정을 중앙재정으로 돌리는 방안을 마련키로 하는 한편,지출을 줄이기위한 방편으로 유류관련 세금을 한데 묶어 목적세를 신설하고 이것이 어려울 경우 광역상수도 건설 등 이제까지 중앙정부가 하던 사업을 지방정부로 떠넘기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방정부를 관장하는 내부무는 기획원의 이같은 「구상」에 대해 완강한 입장을 좀처럼 누그러뜨리지 않고있다.
내무부는 최근 발표한 「지방재정의 현황과 문제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중앙재정에는 주택공사·토지개발공사·도로공사 등 정부투자기관의 사업예산이 들어있지 않다며 이를 포함할 경우 지방재정 규모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보고서는 올해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앙정부가 해야할 고유업무를 지방에 전가한 것이 경찰 경비지원(9백27억원)·농어민자녀 학자금(3백20억원)·탁아소 등 보육사업 지원(2백억원) 등 6천22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유류관련 목적세를 도입(지방세수 감소예상 규모 4천5백억원)하거나 광역상수도 사업 일부를 넘겨받을 경우(총사업비의 30%를 분담할 경우 4천7백억원 소요)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살림(재정자립도 전국평균이 68.0%이나 군의 경우 27.5%에 불과)이 더욱 궁핍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정부와 민자당은 8일 당정협의를 갖고 유류관련 세금을 목적세로 전환해 대도시 교통난 타개에 활용토록 하는 한편,교부금 재원마련 대책을 정부가 별도로 세운다는 타협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안은 새로운 세원발굴의 어려움과 국민들의 조세저항 우려로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여 정부재정의 효율적 배분방안 마련은 좀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한중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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