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세종 그룹 회장·작가 쓰쓰미 세이지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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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업가가 문학을 한다는 이색적인 시각이 아니라 본격적인 한 사람의 작가로서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지난 1일 소설『방황의 계절』한국어판 출간기념회 참석 차 서울에 온 쓰쓰미 세이지(66·제청이)씨는 현대 일본의 대표적 기업가이자 문인이다.
그는 지난 55년 빚더미에 올라앉은 세이부 백화점을 인수, 지금은 세이부 백화점·인터콘티넨탈 호텔 체인·패밀리 마트·세이부 라이온스 야구단 등 2백 개 기업에 연간매출액 5조 엔이라는 거대 기업군 세종(saison)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쓰지이 다카시라는 필명으로 20여권의 소설·시집·수상록을 펴내 무로우 사이세이가·다카미 준상 등 4개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 번역 소개되는 『방황의 계절』은 그의 처녀 장편소설이기도하다. 일본 최초의 중의원이었으며 군수산업으로 재계에서도 성공한 아버지의 추악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소설은 지난 69년 일본에서 출간됐을 당시 비상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그가 성장과정에서 첩의 자식으로서 받아야했던 멸시와 비애, 아버지에 대한 증오, 동경대 경제학부 재학시절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하며 겪었던 갈등 등이 이 소설의 중요한 얼개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이 책이 12판을 거듭하며 현재까지 팔리고 있는데 대해『당시 주인공이 쟁취하려 했던 지적 자립을 위한 싸움이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 일본은 한국에 대해 수많은 죄과를 범했고 그 뿌리가 일본 국내에서는 청년과 여성의 자립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 사회의 낡은 힘이 가족이나 부모를 통해 나타날 때 젊은이나 여성들은 정치투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내면의 싸움으로 대응하게 된다』는 것이 자신의 소설에 대한 해석이다. 그는 사업과 창작이라는 두 개의 분야에서 성공한데 대해『한번이라도 갑부가 되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 일이 없듯 한번도 창작의 열정을 잊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도예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집필중인 그는『수치스런 제국주의 시대에도 일본의 도예가들은 존경의 염을 품고 한국의 도예기술을 배워갔다』면서 2일 이천의 도요지를 방문한 뒤 일본으로 돌아갔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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