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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은 쿠데타”/YS평가 파장/곤혹스런 공화계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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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JP등 당내 관련인사들 거취 새 관심/민주선 “모두 공직떠나라” 공세 불댕겨
김영삼대통령이 3일 기자회견에서 『5·16은 분명한 쿠데타』라고 평가한데 대해 정치권은 각자 입장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은 나아가 『5·16은 우리역사를 많이 후퇴시켰다』고 비판했으며 다만 이와관련한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권은 즉각 민자당내 5·16 관련자들이 공직을 떠나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박지원대변인은 『5·16을 쿠데타로 정의한 것을 환영한다. 정치보복 아닌 역사 재조명을 위해 관계자들의 공직사퇴를 촉구한다』고 논평했다. 김병오 정책위의장은 아예 『(김종필대표는) 이제 물러날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김 대표 묵묵부답
민주당인사들은 김 대통령의 태도나 발언으로 보아 즉흥적인 대답이 아니라 평소 5·16에 대해 정리해둔 생각을 내보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자당내의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공화계 의원들은 무척 곤혹스런 표정이다. 당내인사중 5·16에 직접 참여했던 이는 김종필대표와 이종근·구자춘의원 정도. 김 대표의 측근인 조용직의원은 『대통령 말씀의 초점은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대표 본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의 발언인지라 일절 소감피력을 하지 않았다. 그는 3일 자신을 대신할 당대표감으로 소문이 도는 김명윤후보를 위해 명주­양양 보궐선거를 지원하러 강원도 산골에 갔다가 「한 방」을 맞은 셈이다.
서울로 돌아온 김 대표는 충남지역 도의원들의 주축인 「서해안개발추진위」 멤버들과 함께 시내 음식점 「장원」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전날인 2일만 해도 경북 예천지역을 격려차 방문했던 김 대표는 심형식당 후보로부터 『30여년전 우리 민족이 헐벗고 굶주릴때 나서서 생활을 향상시켜준 민족중흥의 지도자』라고 극찬받은 바 있다.
민주계의원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김 대통령께서 굽은 역사를 하나하나 바로잡고 있다』며 환영했다. 반면 「쿠데타적 사건(12·12)」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정계의원들은 공화계 보다는 덜하더라도 역시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민정계도 떨떠름
32년전인 1961년 5월16일 김영삼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당시 민주계 구파의원들의 신파와 결별해 따로 만든 신민당(61년 2월 창당)의 원내 부총무로서 촉망받는 재선의원이었다.
그는 또 정치정화운동을 외치던 당내 소장파 모임인 청조회의 일원이었다. 5·16은 패기만만한 야당정치인 김영삼의원의 앞길을 고난으로 점철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김종필 현 민자당대표는 박정희장군과 함께 이 쿠데타의 주역이었다.
야당이 정치공세를 펴는 것과 별도로 민자당내에는 5·16 관련인사들의 거취문제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초점은 당연히 김종필대표다.
김 대표는 지난달 15일 대구에서 기자들이 『5·16에 대해서도 재평가 움직임이 있다더라』고 운을 떼자 『누가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이어 다음날 5·16민족상 수상식에서 박정희대통령을 우리 현대사의 「기」로,전두환·노태우대통령을 「승」으로,김영삼대통령을 「전」으로 파악하는 이른바 기승전결 파문을 일으켰다.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민자당으로서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사태여서 『특정 행사장에서 김 대표가 개인적인 사관을 피력했을 뿐(강재섭대변인)』이라고 의미축소에 급급했다.
이같은 일련의 당내 혼선이 김 대통령의 3일 회견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조만간 자진해 거취를 표명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적빈을 경험한 적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 5·16은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경제적 업적으로 각인돼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각 다를수도”
당시 1군사령부 작전과장(중령)으로 5·16에 참여했던 이종근의원은 이점을 겨냥한듯 『보는 이에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 『5·16은 당시의 우리 상황을 다각도로 판단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에는 동기론보다 결과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희대통령의 아들 지만씨(35)은 김 대통령의 평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면서도 『사전적 의미로 거사 자체를 쿠데타라고 볼수 있겠지만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5·16평가는 의회주의자로서의 강한 소신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논란중 일정부분은 어쩔 수 없이 글자그대로 「역사」에 맡겨지게 될 듯하다.
국민들중에는 5·18,12·12에 이어 5·16까지 김 대통령이 역사의 판관이나 된듯 개념을 정리하는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성공한 쿠데타를 당시의 패자가 「단칼」에 평가절하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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