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장편소설 『삼대』 긍정·부정 엇갈린 평가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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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염상섭(1897-1963)의 대표적 장편소설 『삼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최근 새로 출간된 『삼대』의 후기에서 규모에 있어서나, 구성의 치밀성에 있어서나, 내용상의 풍요로움에 있어서나 최대의 현실성을 갖춘 우리 근대소설의 대표작이라 평한데 반해 젊은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또 다른 논문을 통해 이 작품이 친일·극우반공주의의 뿌리인 민족개량주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한 염상섭은 28편의 장편과 1백50여편의 단편을 남긴 근대문학사상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이다.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삼대』는 당대 식민지현실을 배경으로 3대 사이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 유교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변모해가는 일제통치하의 시대현실을 부유한 한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생동감 있게 묘파하고 있다는 것이 『삼대』에 내려진 지금까지의 일반적 평가였다.
해방후 1947년과 48년 을유문화사에서 상·하 2권으로 출간된 『삼대』를 최근 창작과 비평사에서 30년대 조선일보 연재분과 대조, 빠뜨린 부분을 채우고 틀린 부분과 오자를 바로 잡아 『삼대』2권을 다시 펴냈다.
이 책에 붙인 해설 「염상섭의 삼대에 대하여」에서 평론가 김씨는 이 작품을 중산층 의식과 동정자의식을 두 축으로 한 가족사적 소설로 보았다. 조상의 재산을 물려받아 더 불려낸 조부 조의관, 개화기의 계몽주의적 열정에 휘말려 이념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길 잃은 아버지 조상훈과 아들 조덕기, 이들 3대 사이에 벌어지는 모순과 갈등을 다룬 가족사적 소설이라는 지적이다. 조부가 재산과 가문을 지키려는 행위는 종족보존의 욕망으로서 시대를 뛰어넘는 최대의 현실성이라고 김씨는 지적한다. 또 사회주의 이념에 동조하면서도 그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그 사상을 이용해 조선민족의 독립을 겨냥하는 아들의 성향을 김씨는 「동정자의식」이라 부르며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위치시키고 있다.
이와는 달리 역사학자인 전씨는 「소설 삼대에 그려진 식민지 부르좌의 초상」(『역사비평』여름호)이란 논문을 통해 『1931년의 염상섭과 「삼대」의 아들 조덕기는 같은 인물로 민족 개량주의자』라며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민족의 독립·민중의 해방보다 부의 유지를 더 중시하는 사고, 나아가 부의 유지를 통해서만 민족의 독립도, 민중의 해방도 가능하다는 부르좌 사고와 민족개량주의만이 『삼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 전씨의 견해다. 전씨는 『1930년대의 민족개량주의자들은 40년대엔 친일파였고, 50년대엔 극우반공독재의 주역이었으며, 70, 80년대엔 군사파시즘의 동반자였다』고 전제하고 『문민 개혁시대를 맞아 일그러진 한국현대사의 얼굴인 민족개량주의는 청산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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