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도란도란] 와인은 소믈리에에게 투자는 펀드매니저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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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바야흐로 '와인의 시대'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쯤은 아는 체 해야 망신당하지 않는다. 윗분(CEO)들도 열 중 여덟은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푸르덴셜자산운용 이창훈 대표는 와인을 잘 모르는 축이다. 와인은 이름부터 복잡해 당최 기억에도 안 남고…. 그래도 그는 태평하게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즐긴다. 이유는? 소믈리에에게 맡겨 버리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이다. 그러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란다. 밥 먹고 하는 일이 와인 공부인데 오죽 알아서 잘해주겠느냐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와인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고객을 끌어들인다. "와인은 소믈리에에게, 투자는 펀드 매니저에게."

소믈리에에게 맡기겠다면 값을 지불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고르는 것보다 물론 와인 값은 비싸다. 그래서 고른 와인이 결국 같았다면? 배는 아프겠지만 억울할 거 없다. 소믈리에에게 맡기면 웬만해선 실패 안한다. 직접 고른다면 싸게 살 수 있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다.

투자세계는 요즘 '펀드의 시대'다. 그러나 직접 굴리겠다는 사람도 여전하다. 올 들어서 거래소 종목 6개 가운데 1개꼴로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었다. 가장 잘했다는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제대로 골라잡았다면 펀드보다 직접 투자가 나을 뻔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결과론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대신증권 봉원길 종목개발팀장은 직접 투자도 괜찮다고 말한다. 단, 돈에다 시간과 열정까지 투자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다. 돈만 투자하겠다면 펀드에 가입하라고 한다. 직접 투자하겠다면 시간과 열정도 쏟아야 한다.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기업을 분석하고 현장 탐방까지 갈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될지. 다들 시간과 열정 없이 돈만 집어넣고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100달러로 시작해 세계 2위 부호가 된 워런 버핏은 잠자리 들기 전 기업의 연차보고서를 읽는 게 낙이란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기업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일반인이 버핏처럼 난수표 같은 숫자 행렬에서 희열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에게 맡겨라. 돈은 그들에게 투자하고 당신의 시간과 열정은 다른 곳에 쏟아라. 그게 인생을 제대로 '테크'하는 길일지 모른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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