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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절차·신의 무시한 기술위원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대한축구협회가 '박성화 카드'를 결정한 과정은 절차와 신의를 무시한 무리수였다.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협회 기술위원회의 책임이다. 현 기술위는 지난해 7월 핌 베어벡을 국가대표와 올림픽팀을 겸임하는 감독으로 선정했다. 베어벡은 아시안컵에서 부진한 경기를 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베어벡을 사령탑에 앉힌 기술위는 이에 대해 한마디 사과나 책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후임 감독 선임을 논의했다. 박성화 감독은 지난달 부산 아이파크를 맡으면서 기술위원직을 내놨지만 아직 처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기술위원이 동료 기술위원을 감독 후보로 내정하고, 그에게 '선처'를 바라는 꼴이 돼 버렸다.

다음은 프로 구단과의 신뢰 문제다. 박 감독은 1일 FA(축구협회)컵 16강전(대전 시티즌)에서 처음으로 벤치에 앉았다.

그는 "장기적 계획을 갖고 고유의 색깔을 지닌 팀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이틀 뒤 그는 축구협회에 나타나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올림픽팀 전력 보강에 대한 복안을 밝혔다. 축구협회와 박 감독이 프로축구와 클럽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렇게 하고도 앞으로 대표 선수 차출과 관련해 프로 구단의 협조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이번 올림픽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기술위는 소신껏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윗선'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정황이 포착된다. 부산 관계자들은 "우리는 전혀 몰랐다.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나흘을 끌며 진행된 감독 선임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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