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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등급(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신분이나 값 혹은 품질따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는 「등급」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늘상 관심의 표적을 이루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네처럼 등급이나 순위에 집착하는 민족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종적 구조나 서열의식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나 잠재적인 상향의식도 작용한 탓일듯 싶다.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하면 처음으로 삶의 고달픔을 느끼게 하는 것도 학교에서의 석차다. 자녀들의 성적이 몇등급이나 올라갔느냐,혹은 내려갔느냐에 따라 가족 전체의 명암이 엇갈리기도 한다. 이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자신들의 성적 등급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사회의 모든 순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령 어린이들 사회에서의 관심사는 어느 나라의 땅이 가장 넓고 어느나라의 인구가 가장 많으냐,어느 나라의 군대가 가장 많고 어느 나라의 군대가 가장 강하냐 하는 식이다. 어린이들로서는 가질법한 호기심이지만 「우리나라는 과연 몇등이냐」에 대한 관심으로 비약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 의식속에는 「반드시 남보다 윗등급이어야 한다」는 맹목적 순위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급이나 순위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스포츠다. 이기기만 하면 무조건 치켜세우고 지기만 하면 여지없이 매도하는 풍토도 그같은 맹목적 순위의식에서 비롯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88서울올림픽때 한국은 세계4위를 차지했지만 최근 몇년사이의 여러가지 통계들은 한국이 스포츠만큼의 상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년의 경우 미국 인구위기위원회의 「살기좋은 나라」 순위에서는 38위,일본 공사채연구소의 「국가안정도」 순위에서는 20위를 기록했다.
최근 세계은행의 「사회개발지표」에 따르면 생산활동인구(3위),인구밀도(10위)따위에서만 상위를 차지하고 있을뿐 국교교사 1인당 학생수(1백20위),의사 1명당 인구(65위),평균수명(61위)에서는 부끄러운 순위다. 객관적 평가에 따른 등급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들 자산이 각 분야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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