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거울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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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세기 초 세계 열강의 외교관 중 가장 존경받았던 인물은 영국 런던 주재 독일대사였다. 그는 분명 더 높은 자리로, 비록 독일 연방의 총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독일의 외무장관까지는 승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1906년 그는 갑자기 대사직을 사직하고 말았다. 그 당시 런던 외교사절단은 재위 5년째를 맞은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를 위해 만찬을 준비했다.

거의 15년간 런던에 주재했던 그 독일대사는 외교사절단 단장으로서 그날 만찬의 의장 노릇을 하게 돼 있었다. 에드워드 7세는 유명한 난봉꾼이었고, 자신이 원하는 만찬의 종류를 분명하게 지시했다. 만찬이 끝날 무렵 거대한 케이크가 등장하는 순간 등불을 희미하게 밝히고 뒤따라 12명 또는 그 이상의 나체 창녀가 뛰어 들어오도록 하라는 게 국왕의 주문이었다.

그 독일대사는 만찬을 주재하지 않고 대사직을 물러나고 말았다. 그는 "아침에 면도를 할 때 거울 속 내 얼굴이 난봉꾼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21세기 지식경영'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피터 드러커가 지식근로자의 '윤리'에 관한 측정 도구로 제시하는 '거울 테스트(mirror test)'다. 윤리는 하나의 분명한 가치 시스템이다. 그리고 가치 시스템인 윤리는 서로 많이 다르지 않다.

어떤 조직 또는 어떤 상황에서 윤리적인 행동은 그와는 다른 조직 또는 다른 상황에서도 윤리적 행동이라고 드러커는 강조한다. '아침에 거울을 볼 때 거울 속 내 얼굴이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간단한 윤리 테스트다.

거울 테스트는 직업인이 정체성(正體性)을 측정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자신의 가치관과 조직 또는 상황의 요구가 충돌할 때 판단의 기준으로 적합하다. 거울 테스트를 "모든 사람이 나처럼 행동하는 세상에 사는 것은 어떨까"라고 보편화시켜 생각해보는 방법도 있다.

많은 기업들이 비자금 수사의 대상이 되고, 도덕적 기업으로 유명한 IBM이 한국에서는 납품 비리를 저지르는 현실은 거울 테스트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범죄자나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은 주변의 거울을 모조리 치우고 싶어할지 모르겠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