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아름다운 지구' 지킬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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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사무실로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연말 연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각종 우편물과 서류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이 두꺼운 책은 뭔가, 무심코 펼쳤다가 불에 데인 듯 깜짝 놀랐다. 책 속에서 지구의 구석구석이 입체영화처럼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인에게, 지구가 이렇게 아름답다고 뻐기면서 보내는 '지구 그림엽서' 같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듯 짜릿한 느낌이었다.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면서 단숨에 읽은 책이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초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사진작가 얀 아르퀴스-베르트랑이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10년간 헬리콥터를 타고 지구의 갖가지 얼굴을 찍어 묶은 것이다. 하루에 한 장씩 총 366장의 사진과 짧은 에세이로 되어있는데,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상만큼 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진 옆 글이다. 지구의 아픔과 상처, 함께 풀어야 할 문제들을 무겁지 않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사랑스런 지구'를 보여준다면 글은 '지켜야할 지구'를 얘기한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1월 28일자 사진은 멕시코의 토마토농장이다. 푸른 잎 사이로 붉은 토마토가 예쁜 색상대비를 이룬다. 옆의 글은 제 철이 아닌 과일과 채소를 먹는 습관이 심각한 환경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난방이 필요한 온실재배는 어마어마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며 대기오염을 시키기 때문이다. 과소비문제도 고발한다. 인도 델리의 17개 호텔에서 쓰는 물의 양은 이 도시 빈민지역에 사는 사람 130만 명이 쓰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있다. 5월 20일자에는 초록색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브라질의 아마존 우림을 보여주면서, 글은 소수의 거대 영농회사들이 소농들을 땅에서 몰아내,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이런 삼림을 무차별 벌목한다고 적고 있다.

이 외에도 에이즈, 물 부족, 식량 부족등 우리가 지구의 일원으로 반드시 알아야할 문제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미적 욕구와 더불어 지적욕구도 십분 충족시켜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지구가 이 한 권에 들어와 있다니. 정말 튀어봐야 지구 안이로구나.' 내가 7년간 육로세계일주 끝에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넓긴 뭐가 넓은가. 지금 당장 세계지도를 펼쳐보라. 세계가 한 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가. 지구본이 있다면 한번 돌려보라. 한바퀴 도는데 단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발짝도 우주로 나갈 수 없다. 겨우 38만 킬로미터 밖에 있는 달조차 마음대로 다닐 수 없으니, 죽으나 사나 이 좁은 지구 안에서 살아야한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지구의 문제가 결국 우리의 문제라고 할 밖에. 함께 고민하고 같이 풀어가야 한다고 할 밖에.

그런데 내가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지금은 긴급구호활동을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한국인들은 이런 '우리의 문제'들에 상당히 무심하다는 점이다. 몇 년 전 한 UN산하기구에서 30여 개 국의 중학생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급박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북미나 서유럽 아이들은 지구 온난화 현상과 자원고갈을,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이들은 에이즈, 최빈국 부채탕감과 물 부족을 들었다. 우리 나라는? 놀랍게도 입시라고 대답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물론 질문할 때 '국제문제'라고 확실히 말했다면 달라졌겠지만, 문제의 범위를 세계와 개인 어디로 보느냐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건 명백한 어른들 잘못이다. 세계화는 영어교육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등 소프트웨어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이 매우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새해 첫 책으로 흥미와 실속을 고루 갖춘 책을 만나 정말 기쁘다. 나는 이 책을 중학교 다니는 조카에게 선물하는 척하면서 '세계화 교제'로 쓸 예정이다. 지구본을 옆에 두고 사진 속의 지명을 신나게 찾다보면, 어느덧 아이와 내 마음속에 이 세상이 통채로 들어와 있을테니까.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사진설명>
산호 군락 위에 떠 있는 태평양 소시에테 군도의 흰 돛단배. 하지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점점 더 쌓이게 되면 현재 산호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바닷물의 화학적 균형이 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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