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10. 대운(大運) 서막-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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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첫 국제CT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을 묶어 1974년 7월 펴낸 ‘핵과학’의 CT특집호.

 베일에 가려져 있던 컴퓨터단층촬영(CT)의 수학적 해법이 풀렸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내 이름을 영어 식으로 부르면 ‘장희조’다. 논문에는 영문 첫 글자를 따 ‘Z. H. Cho’라고 적었다. 대학이며 산업계에서 강연·컨설팅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CT의 비밀을 풀었다고는 하나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었다. 미국에는 검증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풀은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누가 검증 좀 해 주십시오”라고 광고를 하고 다닐 처지도 아니었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건드려 보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에 내가 푼 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실력과 확신에 의지해야만 했다.

 처음 CT 상품을 만든 영국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내가 CT 분야 선두주자가 됐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뿌듯함은 배로 늘어났다.

 그들 중에는 나를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보통 한국인보다 깡마르고 키도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1973년 초였다. CT에 대한 관심도를 알아보고 학문적인 검증을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가 주도해 CT 관련 국제심포지엄을 열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나서서 국제심포지엄을 열면 몇 명이나 초청에 응할까’.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간 지 1년도 안 돼 미국 물정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한 켠에 일말의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 그 해 9월에 국제심포지엄 일정을 잡았다. 수학과 물리학의 대가들을 물색했다. 연락처와 전공 분야 등을 확인하고 초청장을 보냈다. 시카고대, 벨연구소, 미 국립의료원(NIH), UC버클리 등의 핵 의학자와 물리학자·수학자를 망라했다.

 UCLA에서 열린 CT 국제심포지엄의 참가자는 100여 명이었다. 이는 세계 최초의 CT 국제심포지엄이었다. 학자들뿐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몇 명이 참가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나는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학문과 CT 해법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심포지엄 주제발표자는 다섯 명이었다. 그 중 나를 포함해 세 명은 나중에 세계 과학계의 큰 영예인 미국 학술원 회원이 됐다.

 그때 발표된 논문을 묶어 이듬해 학술지 ‘핵과학(Nuclear Science)’의 CT 특집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그 뒤 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도운 ‘CT의 바이블’ 이 됐다. ‘핵과학지’ 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특집이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처음 상품화된 영국의 CT는 금세 구식이 돼버렸다. 미국에서 내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CT 관련 새로운 이론을 쏟아냈다. 바야흐로 CT의 큰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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