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자의 맛있는골프] 남자 캐디의 악몽같은 하루

중앙일보

입력

아! 나는 무슨 할아버지 담당관이란 말인가.

오늘도 이 땡볕에 할아버지 4분을 모시고 라운드를 나갔다. 이건 뭐 금방이라도 볼 치다 병원으로 실려가실 정도로 숨을 헐떡이시면서 볼을 치셨다.

그래도 구력은 높은신지라 일단 오비 안 내고 페어웨이 이곳저곳에 안착. 세컨드 지점으로 가서 골프카를 세웠다. 그리곤 거리를 불렀다.

나: 고객님은 160m, 고객님은 165m, 고객님은 180m, 고객님은 200m가 넘습니다.

할아버지1: 어이~미스타!! 우리 저기까지 걸어가기 힘들어.
할아버지2: 그래 우린 걷기 힘들다고.
할아버지3: 건강한 자네가 저 볼을 카트도로 옆으로다 좀 주워다 주게.
할아버지4: 그럼 우린 여기서 치겠네.
나: 크헉~~(뭐~~뭐라고요? 4개를 다 주워다 다시 여기로 원위치?? 미치겠다)
"아~~네, 금방 다녀 옵죠~!"

벤 존슨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눈썹 휘날리게 뛰었다. 진행상 세컨드샷을 하고 어프로치 지점에 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볼들을 다시 카트 도로쪽으로 원위치 시켜달라는 거였다. 그날 나는 이곳저곳 흩어진 드래곤볼 찾기 놀이를 했다.

'아~~드뎌, 내가 페어웨이에서 피 토하고 죽는구나 오늘.'

그린에서 퍼터를 하고 1번 홀은 홀아웃 하는 쪽이 65도 각도의 오르막 경사. 할아버지들께서 엉기적 엉기적 낮은 자세로 오르기 시작했다. 퍼터라도 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내밀어 퍼터를 잡았다. 아니! 그런데 퍼터를 놓지 않는것이 아닌가.

할아버지1: 이봐 건강한 자네가 날 끌어주게나.
나: 크헉~~ 아 네.

올라오다 보니 왠지 정말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이야. 그 오르막길에 나를 기둥 삼아 4명의 할아버지들이 퍼터를 잡고 줄줄이 경사를 오르고 있는것이 아닌가.

한 홀 지났는데 18홀 돈듯한 이 벅찬 느낌은 뭘까?

잠시 땀을 식히고 있는데 앞바람이 굉장히 불어오는게 아닌가. 순간 내 모자와 할아버지들의 모자들이 강한 앞바람에 휙~~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우린 서로 쳐다보면서 '뭐 이런 일도 다있네'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봐~ 건강한 자네가 좀 주워 오지."

아참~~(난 캐디였구나. 재빨리 달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모자를 주웠다)

벅찬 티샷을 하고 그린으로 이동. 파3 홀이라 버디찬스가 생겼다. 살짝 신중히 라인을 봐주고 퍼터 하는 소리가 들리고 '땡~~그랑'소리와 함께 볼이 홀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했다.

"이봐~미스터, 내 생에 마지막 버디가 될 수 있다네. 이것이…."
나는 "네~~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고 말했다.

그리곤 몇 홀을 힘겹게 돌고 있을 때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미흐하, 미하하에, 에가, #$$%#$^#$^%."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한분이 나서서 "이봐, 미스터~~ 미안 한데 이 친구가 아까 전전홀 쯤에서 틀니를 주머니에 넣다가 흘린 모양이네."

"네? 뭐여? 틀니요?"(아니 웨지를 흘려서 찾으러 가본적은 있어도 틀니라니…) "정말 그런 걸 흘렸어요?"

할아버지 왈 "미안하네 아까 저 친구가 버디해서 축하해주려고 잠시 말하려고 끼었나보네."

나는 "알~~았어요~~~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다녀올테니…."

그러곤 축지법을 이용해 옆홀 넘고, 산 타고, 오르막에서 뛰어 내리고, 그 넓은 곳에서 틀니를 찾아 헐떡이면서 와서는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며 내밀었다. 그런데 기다리라고 했다고 카트에 가만히 앉아서 마냥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오~! 미스터 찾은건가? 자넨 역시 굉장해~! 굉장해~!"

하지만 앞팀하고 간격이 너무 벌어졌다. 나는 마냥 지체할 수 없었다.

"꽉 잡으세요!!"

부웅~~~달리기 시작했다. 파5를 그냥 태운채로 달리기 시작했다(이쯤되면 막가보자는 거죠).

할아버지 "미스터~~이 홀은 안 치고 그냥 건너뛰나?"

나는 "네~~고객님, 이홀은 티박스부터 그린까지 심한 오르막이라 이홀을 치게되면 18홀 도시는데 아무래도 험한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그 틀니를 찾으러 다녀오면서 앞팀을 좀 놓친 것 같습니다. 부디 넓은 맘으로 양해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래? 그렇다면 우린 자넬 따르겠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무전 날아온다. "xxx씨. 홀 밀려 놓고 그건 뭔데!!"

"미안하게 되었어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여.ㅋㅋㅋ"

그러곤 또 파3 홀이 왔다. 또 다시 찾아온 버디 찬스. 홀도 보이지 않는다더니 볼은 홀을 찾아 쏙 들어가는게 아닌가. 할아버지분들이 그린 위에서 뛰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뛰면 안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손바닥을 펴고 그린에서 뛰면 안된다고 흔들었다.

그러자 버디를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내 손바닥에 손을 맞추며 하이파이브를 하는것이 아닌가(내가 돈다 돌아).

^^;;;;(애써 썩소를 지었다)

정말 피 토할 정도로 힘들긴 했지만 한 분의 낙오자 없이 18홀을 무사히 완주했다. 정말 긴 하루였다.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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