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소유분산 서둘일 아니다/정구현 연대교수·경영학(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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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은행빚 「출자전환」 구상을 보고…/정부의 기업지배 강화 자율화에 역행/강제 「분산」보다 상속·증여세로 해결
재벌의 주식이 대주주 가족에게 너무 집중되어 있다는 「소유집중」의 문제가 다시 사회의 관심으로 부상하였다. 정부내 일각에서 재벌의 소유집중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시중은행의 재벌에 대한 대부를 출자로 전환한다는 구상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되었으며,며칠전에는 부총리까지도 이러한 가능성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30대재벌을 중심으로 볼때 지배가족은 자체 소유분과 계열사간의 상호출자를 포함,총자본의 50%가 넘는 높은 지분 소유를 통해 경영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총자본의 40%에 달하는 계열기업간의 상호출자를 빼면 지배가족의 소유지분은 83년 17.2%에서 92년 13.9%로 줄어들었으나 미국·일본 등의 선진기업에 비하면 대주주의 소유집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가 이제 평균 40년에 못미친다는 것을 감안하면 1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 기업과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기업의 소유구조는 어느나라나 경제체제를 특징지우는 핵심적 문제다. 경제효율성만을 따졌을 때 과연 소유주경영체제와 전문경영체제 중에서 어느쪽이 더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미국 기업의 경우에는 오히려 전문경영체제가 갖는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즉 전문경영인들이 주주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과 또 전문경영자들이 너무 단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주주가 여전히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그간의 몇가지 기업여건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지난 30년간 은행의 금리가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차입을 늘리면 기업에 무조건 이익이었으며 따라서 기업의 부채의존도가 높았다. 둘째,상속세·증여세 등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주식을 넘겨주기가 쉬웠다. 셋째,상호출자나 무의결권주 발행 등의 장치를 통해 대주주의 경영권 유지를 정부가 도와주었다. 넷째,「주인없는」 기업이 제대로 경영될 수 있는 여러 기본 장치나 여건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경영자에게 회사를 맡기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요약컨대 기업의 소유구조는 종속변수이지 독립변수가 아니다. 현재 한국 기업의 소유집중은 지난 30여년간의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산물이다. 이제와서 독립변수를 변경시키지 않고 성급히 종속변수를 바꾸려다 기업시스팀 자체가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국제경쟁 시대에 정부의 대기업 정책 상위 목표는 국제경쟁력 강화가 되어야지 소유분산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을 촉진하고 기업이 자기혁신을 통해 국제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약점은 금융시장이 경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금융기관이 비능률적인 점이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적 개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 여신의 출자전환 구상은 정부의 기업지배를 강화하고,은행 자체의 부실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정책이다. 국제경쟁력이 별로 없는 은행으로 하여금 그나마 어느정도 경쟁력이 있는 민간 기업을 간섭하게 한다는 것은 한국 경제를 규제에서 풀어 자율화하겠다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정부가 상속세와 증여세를 제대로 부과하고,기업이 증자해나가면 앞으로 20년내에 소유집중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어떤 재벌이 국내경제에서의 위치를 유지하려면 앞으로 20년간 매년 15% 정도는 자본금을 늘려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지배가족의 소유지분은 자연스럽게 5%미만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당면한 문제는 「주인없는」 조직에서 어떻게 경영의 정통성과 효율성을 유지하느냐 하는 점이다. 전문경영체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전문경영자가 양성되어야 하고,종업원과 노조의 의견이 경영에 반영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 이사회 제도가 제대로 가동되어야 하고 전문경영자의 업적에 대한 평가제도,경영자의 부정이나 비행에 대한 감시제도,기업 재편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시장 등이 정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장치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덜렁 소유구조를 바꾼다면 기업의 지휘체계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며,한국 경제는 그 결과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정책의 우선순위는 경쟁의 촉진에 두어져야 하며,경제상황의 종속변수인 소유구조를 인위적으로 건드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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