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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힘의 공백 노린다|"평화의 독버섯" 세계 무기 시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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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덕 안기부장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주변 정세 보고」를 통해 중국과 일본이 종전의 국방 개념에서 탈피, 아시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최신 무기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 준비 등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아시아에서는 이 두나라의 군비 증강에 두려움을 느낀 주변국들도 국방 예산을 늘려가면서 무기 도입 경쟁을 벌여 냉전시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 (SIPRI)가 펴낸 자료에 따르면 87년 전세계 무기 거래 총액은 약 3백98억 달러에 달했으나 91년에는 2백21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이같은 변화는 최대 무기 수출국이었던 구 소련의 무기 수출이 91년에 전년도에 비해 59%나 줄었기 때문이다. 구 소련의 무기 수출 감소는 바르샤바조약기구 (WTO)가 해체됨에 따라 동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요가 사라진 것과 인도·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수출이 줄어든 탓이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91년 세계 무기 수입액의 35%나 차지함으로써 중동 지역을 제치고 가장 무기를 많이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동아시아가 35%>
동아시아 국가들이 무기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의 안보 상황이 크게 불안정해진 것을 반영한다.
구 소련이 이 지역에서 철수하고 미국도 점차 주둔 군수를 줄여나감에 따라 생긴 힘의 공백과 이를 틈탄 일본과 중국의 군비 증강 노력이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에 군비 강화를 추진토록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 각국들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비싼 무기를 대량 수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생긴 것도 동아시아 각국의 무기 수입이 늘어나게 된 요인이다.
무기 수출국 추세는 미국이 90년 87억4천만 달러를 수출, 구 소련을 제치고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한 것과 87정∼91년 누계로 수출국 순위 6위였던 독일이 91년 3위로 크게 부상한 것이 두드러진다. 미국이 선두로 나선 것은 미국 무기의 주고객이 유럽과 동아시아 나라들이어서 구 소련처럼 급격한 수출 감소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급부상은 구 동독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을 대량 처분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무기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됨에 따라 수출국들의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새로운 동향이다. 우선 유럽 재래식 무기 감축 협정 (CFE)에 따라 상당량의 무기가 남아돌게 된 유럽 각국들, 특히 민주화 개혁 과정에서 재원 마련이 시급한 동유럽 각국들이 기존에 보유했던 무기들을 헐값에 대량 처분하고 있다 또 걸프전 때 첨단 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많은 나라들이 재고 무기를 처분하고 신무기를 도입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구식 무기들은 주로 내전중인 구 유고 연방이나 구 소련 공화국의 여러 세력들, 그밖에 아프리카·중남미 지역, 필리핀 등 오랜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에 대량으로 공급되고 있다.

<수출 못하면 폐업>
러시아의 군수 산업체들은 수주량이 절반 이하로 크게 줄고 있는 데다 민수품 생산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신규 투자 자금 수요가 겹쳐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무기 수출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 때문에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위급 정치인들까지도 대거 무기 판매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옐친 대통령 일행은 첨단 미사일 체제를 비롯한 무기 구입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도 올해초 아시아 각국을 순방하며 무기 판매에 나선 바 있다.
러시아의 무기들은 미국 무기 못지 않은 성능을 가졌으면서도 가격이 싸다는 점 때문에 조만간 수출량이 다시 크게 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무기 수출이 세계의 안정을 해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서방국들의 압력과 비교적 값이 비싼 중화기·첨단 무기들은 군사적 동맹관계를 기초로 해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특수성 때문에 러시아의 무기 수출 노력은 아직까지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군수 업체들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판매 활동을 펴고 있다. 정부가 국방 예산을 크게 줄이면서 군수 업체들은 사상 최악의 불황기를 맞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활로를 수출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분쟁 억제를 위해 무기 판매를 자제해야한다는 주장에 맞서 무기 판매를 정부가 허가하지 않을 경우 미군에 공급되는 무기의 생산 라인을 폐쇄하겠다는 식의 위협까지 동원해 무기 수출을 관철하고 있다. MlA1 탱크를 생산하고 있는 제너럴 다이내믹스사는 중동 지역에 탱크 1천대를 판매토록 허가하지 않으면 올해부터 탱크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미 국방부에 통보한 적이 있다.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대만에 F-16전투기를 1백50대나 판매키로 결정한 것은 미국내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적극적으로 무기 판매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기존 주요 무기 수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중국·이탈리아·네덜란드·브라질·스웨덴·이스라엘·스페인 등도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무기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어 바야흐로 세계 무기 시장은 춘추 전국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91년 5대 무기 수출국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 이사국들은 무기 수출이 세계의 안정을 크게 저해한다는 인식 아래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파리에서 국제 무기 거래의 통제 및 감시 방안을 논의하는 회담을 가졌으며 같은 해 유엔은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무기 판매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제 사회의 무기 확산 방지노력은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는 사상 최대로 일컬어지는 무기 판매 전시회가 개최돼 상당 규모의 거래 계약이 체결됐다.

<방지책 효과 없어>
주요 무기 수출국들이 표면적으로는 무기 거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판매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2중적 현실은 무기의 암거래를 활성화시키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서방의 군수업체들이 암거래를 통해 수술하는 무기는 연간 수십억 달러나 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러시아나 동유럽 각국들도 이 암거래 시장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는 증거도 발견되고 있다. 무기 암거래의 활성화는 재래식 무기만이 아닌 핵무기·화학무기 등 대량 파괴 무기마저도 거리낌없이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라크의 핵무기와 화학 무기 생산, 리비아의 화학 무기 공장 등이 구 서독의 기업체들이 제공한 원료와 기술에 크게 의존했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 밝혀진 사실이다. 또 최근 동유럽이나 구 소련 공화국들에서 핵 물질과 핵무기 개발 기술 등이 싼값에 대량 유출되고 있는 증거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이는 냉전 종식의 시대라고 일컫는 오늘날에도 인류의 안녕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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