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과거평가 논쟁(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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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12의 위법성 여부로 촉발된 논쟁이 5·17,5·18에 이어 5·16에 이르는 전반적인 과거평가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12·12의 위법성여부를 묻는 야당의원 질문에 「위법이 아니다」고 해 물의를 빚었던 총리답변은 그 스스로의 사과와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란 김영삼대통령의 12·12성격규정으로 가닥이 잡히는듯 했다. 그러나 그후 김종필민자당대표의 「쿠데타라기보다는 군내부반란」이란 발언으로 12·12를 보는 집권세력 내부의 시각차가 여전함이 드러났다. 김 대표는 그 이유로 쿠데타는 정권장악을 위해 치밀한 사전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군내 헤게모니 장악을 노렸던 12·12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오히려 정권장악을 노렸던 5·17이 사실상 쿠데타라는 것이다.
○내논에 물대기식 논리
30여년만의 문민정부임을 내세워 5·16 이후의 3,4,5,6공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김영삼정부의 기본 흐름에 맞서 기(박정희)·승(전두환 노태우)·전(김영삼)·결(?)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른바 「역사 계승론」이다.
지난 시대를 보는 집권세력 내부의 이런 시각차와 그 틈새를 이용하려는 야당의 의도가 겹쳐 상당기간 과거논쟁은 정략적 성격을 띠게 될 전망이다. 시대가 바뀐 이상 지난 시대에 대해 새롭고 보다 폭넓은 평가를 시도하는 과정은 바람직하다. 또 정치권이 문제를 제기하게 마련인 초기단계에서 그 논쟁이 정치성을 띠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그 단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평가가 포괄적이지 못하고 외마디성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박정희시대를 평가한다고 할때 그 대상을 5·16에 주로 맞출 수도 있고 5·16에서 비롯된 한 시대를 논할 수도 있는 것이다. 평가의 잣대도 크게 합법성과 실적이란 두개의 기준이 있을 수 있다.
박정희시대를 5·16에 초점을 맞추면 그것은 위법적인 군사쿠데타다. 다만 성공한 쿠데타이기 때문에 초법적 위상을 지니게 됐을 뿐이다. 그러나 박정희시대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작은 불법적이었지만 그시대 전체를 불법,또는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 시대 집권세력이 이룩한 실적을 놓고 보면 민주정치의 후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포괄·균형적 시각필요
요즘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12·12도 마찬가지다. 우선 12·12사건 자체만을 놓고 보자. 12·12 주체들의 행동은 군통수권자의 허가같은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분명히 위법이다. 그것이 쿠데타든,군내부반란이든 그 위법성에는 다름이 없다.
12·12 얼마후 당시 전두환·노태우장군에게 각각 들은 바로는 정권을 잡기보다는 정규육사출신이 군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뜻이 강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12·12로 군의 입김이 강해지긴 했지만 적어도 다음해 4월초까지는 당시 최규하대통령정부의 국정수행에 별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선 군내부반란이란 김 대표의 성격규정이 사실과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12·12가 없었어도 본격적인 권력장악의 길은 연 5·17이 그렇게 쉽사리 이뤄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12·12의 쿠데타적 성격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12·12와 5·17사태를 넘어 거기에서 비롯된 전두환시대에 대해서는 박정희시대와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적 정통성의 취약성과 비민주성이란 측면과 함께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몇가지 중요한 실적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노태우시대는 여야합의로 개정한 헌법에 따라 직접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법적 정통성이 상당히 보완됐다. 민주화의 진통기에 처해있던 그 시대는 국가발전의 정체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으나 민주화·자유화가 진전된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지난 시대에 대한 평가와 논쟁은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합법과 불법을 가리고 국민을 교육시킨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것은 계승·발전시키고 나쁜 것은 가려 단절·청산의 과정을 밟아 후세를 경계하게 된다.
○사회 각계 논쟁 거쳐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지난 시대에 대한 평가와 논쟁은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볼 일이다. 감춰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선 국가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권 주도의 평가작업도 있어야 한다. 다만 그것은 너무 정략적이고 단편적인게 약점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고 보다 포괄적인 균형된 당대역사 평가를 하자면 정치권 주도의 평가는 초기단계로 한정되는게 좋다.
그러나 학계·언론계와 사회 각 부문에서 지난 시대에 대한 활발한 논쟁과 본격적인 평가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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