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군서 수상한 움직임 3당 합당으로 모면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YS,전·노 정권과 단절 결심/「트로이의 목마」로 후보 쟁취/일부선 “이긴자의 논리… 노 지원 있었다”
80년대 현대사는 과연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김영삼대통령의 선창으로 12·12와 5·18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름으로써 「하극상」「쿠데타」란 표현이 정설처럼 되고 있다.
진상규명·처벌을 놓고 여권과 광주 및 야측의 의견이 그동안 줄곧 부닥쳐 왔지만 「사건의 정체」에 대해 장삼이사는 벌써 알고 있다. 이젠 적어도 12·12가 하극상이 아니었고 쿠데타도 아니었다는 주장은 거의 설득력을 잃어가는 듯하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제 그렇다면 12·12의 「쿠데타적」 사건 세력과 손을 잡았던 3당합당은 어떻게 되는지에도 관심을 갖게됐다.
○명쾌한 답변 못해
이 질문에 대해 김 대통령의 참모나 정부요직자들도 명쾌한 답변을 하지못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황인성국무총리다. 그는 『12·12는 불법』이라고 해놓으면 3당합당부분이 도마위에 오를까봐 걱정해 위법이 아니었다고 했다고 한다. 황 총리의 그런 입장에 공무원들은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 자신은 3당합당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김 대통령과 청와대참모들은 최근 충분한 교감과 토론을 거쳐 이 부분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문민정부의 역사성은 3당합당으로 오히려 살아났다. 김 대통령은 12·12세력과 동거한 게 아니다. 12·12세력의 집권연장을 막기위해 호랑이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호랑이를 때려잡았다.』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대표는 한지붕세가족으로 동거한 게 아니다. 김 대표는 탄압받았다. 후보는 쟁취한 것이지 양위받은 게 아니다. 김 대통령은 노 전대통령에게 신세진 게 하나도 없다.』
청와대관계자들은 요즘 3당합당과 김­노 관계를 이렇게 압축해 설명한다. 90년1월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인은 합당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표현했다. 적어도 노 대통령과 김 총재가 생각했던 「구국」은 차이가 컸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야당인 YS가 다이너마이트를 가슴에 품고 여권속으로 뛰어들어 가게된 동기를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핵심참모들이 전한 「김 대통령의 생각」은 이렇다.
『여소야대의 혼란상이 계속되면서(김 대통령)는 또한차례 군사정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돌·각목·화염병·최루탄·극렬파업…. 내 경험으로 보아 군은 이런 상태를 방치하지 않는다. 80년엔 어떠했는가. 구체적인 정보도 있었다. 일부 군세력이 정변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있다가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김 대통령은 군부집권의 연결고리를 끊고 문민정부를 세우기 위해선 집권여당속에 들어가 후보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설에 가속
이 대목은 대선승리후 외국언론이 『YS는 「트로이의 목마」를 타고 적진에 숨어들어가 적군을 무찔렀다』고 분석한 것과 똑같은 논리다.
김 대통령은 90년 1월31일 구통일민주당의 마포당사에서 야당총재로서는 마지막 기자회견을 갖고 합당의 시대적 당위성을 옹호한 적이 있다.
청와대측은 3당합당을 놓고 「동거」「여당변신」 심지어 「변절」「야합」이라고 묘사 또는 매도하는데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는 기색이다. 합당의 원모심려나 그후 노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섭섭한 대접을 생각하면 당치도 않다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노 전대통령에 대한 김 대통령의 서운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3당통합을 해서 김 대통령이 노 전대통령에게 시혜를 받았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본인의 감하고는 거리가 멀다. YS가 얼마나 시련을 겪었는가. 곳곳에 웅덩이와 철조망이 많았다. 막판에 어떠했는가. 노 대통령은 중립한다며 매정하게 손을 뿌리치고 떠났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이같은 논리는 어디까지나 「이긴자」의 결과론으로 분식됐다는 비판도 없지않다. 3당합당전후 군부의 수상한 움직임설 자체가 그때마다 그 이후 한번도 없었다는게 그 첫번째 반론이다. YS의 후보쟁취론도 수긍가는 면이 있지만 노 전대통령의 음양의 지원도 알만한 사람은 또 다 아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YS가 3당합당을 했다고 해서 군사정권의 인맥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3당합당의 결과 정권을 쟁취했다고 해서 사이비 문민정부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이비문민」 반박
김 대통령은 5,6공의 12·12세력과 완전히 자신을 분리시키되 12·12에 대해 정치보복은 하지않겠다는 결심이 확고하다.
한 측근은 『정치보복을 않겠다는 것은 대선공약이었다.
대선에서 당선됐으니 공약은 지켜야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3당통합을 평가하기엔 역시 너무 이르다.
김 대통령이 5·18의 진상규명을 역사에 맡기자고 한 것처럼 3당통합도 역사의 몫이기 때문이다.<김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