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김태헌
“둥빈이는?”
내가 묻자 엄마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학교 갔어. 그래도 책가방 챙겨서 갔어. 다행이지 뭐야. 그래 다행이야. 학교라도 가주니까. 요즘 학교도 안 가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나는 우유를 한잔 따라서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엄마… 둥빈이 마음도 아플 거야. 나도 그렇게 반항했었어. 아빠한테. 어제 둥빈이 보니까 꼭 날 보는 거 같아서….”
내가 말했다.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엄마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알아. 엄마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외할머니한테 많이 반항했던 거 같아. 왜 같은가… 하면 분명 반항을 하긴 많이 했는데 잘 생각은 안 나거든.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서운하게 했던 거는 하나하나 다 생각나는데, 내가 외할머니한테 뭐라고 했는지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외할머니도 엄마 때문에 많이 우셨어. 나중에 너 같은 딸 꼭 낳아봐라, 뭐 이런 말도 하셨지. 외할머니 말대로 내가 당해보니까, 부모 되는 거 너무 손해나는 일이다. 뭐 이런 법이 다 있어? 무조건 참아야 하고 져줘야 하고…. 씨이.”
마지막 대목을 이야기하며 엄마는 피식 웃더니 스스로에게 하듯 다시 말을 이었다.
“괜찮아. 엄마가 어제 책을 찾아보니까 남자 아이들 사춘기 때 반항하는 게 더 낫대. 반항도 안 하는 게 더 무서운 거래…. 다만 엄마는 그동안 어린 둥빈이가 겪어야 할 일들 생각하면서 미안하고… 또 마음이 아팠어.”
그리고 그날 밤 둥빈은 또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둥빈이 들어오자 무슨 말인가 해보려고 했지만 둥빈은 방문을 탁, 하고 닫고 들어가 잠가버렸다. 엄마가 둥빈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은? 이 녀석아 반항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둥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에는 겨울을 재촉하듯 비가 내렸다. 교과서를 펴놓고 있다가 밖으로 나가보니 엄마가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엄마도 저녁을 거른 거 같았다.
“엄마 술 마셔?”
내가 물으니 엄마는 “응” 하고 대답하더니, 비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 곁에 앉았다.
“나 대단한 엄마 아닌데…. 나, 모성 같은 것도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둥빈이가 저러니까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돈을 버는 것도, 명성을 얻는 것도, 의미 있는 글을 써서 설사 세상의 문학상이란 상을 다 받는다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니? 다 부질없게 느껴져. 예전에 말이야 위녕…, 내가 너희 아빠랑 둥빈이 아빠 혹은 제제 아빠에게 그랬거든. 세상을 다 구원하는 척하면서 자기 아내는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이젠 내가 너희에게 그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기가막혀.”
엄마는 천천히 말하며 소주잔을 비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의 침묵 사이로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처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힘이란 힘은 다 빠져나간 듯이 보였고 엄마 특유의 씩씩함 같은 것이 사라져 약하고 늙어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늙어갔을 때를 상상했다. 엄마는 언제나 나이보다 젊고 유능하고 자신만만한 줄 알았는데, 이제 엄마는 늙어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