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사태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탈레반이 한국인 피랍자를 추가 살해하면서 인질 석방 협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탈레반은 앞으로도 인질을 더 살해하며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31일 "탈레반 포로를 풀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인질 살해 주기가 점점 짧아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는 또 "이슬람 율법은 '눈에는 눈'이라고 가르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린이든 누구든 억류하고 죽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디는 이와 함께 "탈레반 최고지도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사진)가 이끄는 '지도자 위원회'가 협상 시한을 1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으로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오마르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탈레반의 반정부 투쟁을 지휘하고 있다. 강경론자인 그의 개입으로 탈레반은 더욱 강하게 나올 전망이다.

반면 아프간 정부는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올 3월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이탈리아 기자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탈레반 수감자 5명을 풀어주면서 "단 한번뿐인 거래"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 특사인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달 29일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났으나 "인질 석방에 협력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뿐 구체적 언질은 없었다.

둘째,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지 않으면 인질들이 순차적으로 살해될 수 있는 만큼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다. 이와 관련, 미국과 아프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주목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5~6일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난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방미는 인질 사태와 무관하게 계획된 것이나 당연히 이 사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우방인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아프간 수감자 석방을 묵인해줄 경우 사태가 반전될 수 있다. 외신들은 이탈리아 기자와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이 성사된 것도 미국이 묵인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두 번씩이나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저버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셋째, 탈레반이 돈을 받고 인질을 풀어주는 경우다. 탈레반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인 인질을 풀어주면서 200만 달러(약 19억원)를 받았고, 올 3월 이탈리아 기자 석방 때도 거액을 챙겼다. 한국이나 아프간 정부도 돈으로 해결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인 오마르까지 개입한 상황에서 탈레반 수감자 석방 없이 돈만 받는다면 탈레반의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아마디 대변인도 "우리의 요구는 돈이 아니라 수감된 동료 석방"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넷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아프간군이 구출작전을 펼칠 가능성이다. 탈레반이 인질을 계속 살해할 경우 최후 수단으로 동원하는 카드지만 인질의 생명이 위험하다. 현재 나토와 아프간군은 인질 억류 지역을 느슨하게 포위하고 있다. 탈레반은 인질 감시 대원들은 폭탄 조끼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재홍 기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아프가니스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 출신의 탈레반 최고 지도자. 1989~92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주도했다.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난 뒤에는 탈레반을 결성해 세력을 키웠다. 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 정권을 이끌며 여성의 교육과 취업 금지, 유흥 금지 등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시행했다. 9.11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세력을 보호하다 미국의 공격을 받고 파키스탄 국경지역으로 쫓겨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