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커녕 도산" 슬롯머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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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힘들이지 않고 「짭짤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퇴직금 등을 털어 슬롯머신업에 뒤늦게 지분 참여 등으로 뛰어들었던 투전 업자들이 정덕진씨 사건으로 거의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슬롯머신이 「황금알을 낳는 기계」임이 초기 큰손들의 성공으로 확인된 후 후발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던 투자자들이 최근 망신살까지 겹친 회오리바람에 휘말리고 있는 것.
현재 서울 시내에 허가나 있는 79개 투전기 업소 가운데 정상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4곳에 불과하고 나머지 업소들은 휴·폐업 상태. 이중에는 「큰비」를 피해 일시적으로 문을 닫은 경우도 있으나 상당수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사실상 문을 닫고 전업을 고려 중이다.
91년 법개정으로 수익이 줄어 경영난을 겪어오다 정씨 사건으로 결정타를 맞고 있는 것이다.
Y호텔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하다 2년전 퇴직하면서 회사측의 배려로 퇴직금 전부와 융자금 등 1억6천여만원을 투자, 이 호텔 오락실을 넘겨받았던 Y모씨 (47)는 지난 6일 문을 닫았다.
Y씨는 『호텔측에서 장기간 근무했다 퇴직하는 사원을 위해 수익성이 높은 오락실 경영권을 주는 관례에 따라 이를 인수했으나 경기 악화와 당국의 규제 강화로 오히려 손해만 봤다』며 『이번 사건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게 돼 빚 갚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91년 개정 법규는 승률을 82%에서 87%로 높였으며 종전 한개 5백원짜리 코인 3개를 넣고 한번 당기는 「3코인제」를 한개만 넣게 하는 「1코인제」로 바꾸었고 상금 외에 보너스 제도를 없애 고객·수익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C호텔 오락실 직원으로 일하다 지난 91년 친구들로부터 빚을 얻어 오락실 경영권을 샀던 김모씨 (34)는 『국민학교 6학년과 2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오락실 운영 사실조차 숨기며 떼돈을 벌 꿈에 부풀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한숨을 짓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정씨 등 자금력이 튼튼하고 고객이 몰리는 대형 호텔에 자리잡은 일부 업소들을 제외한 30여개 업소도 마찬가지.
「황금알을 낳는 기차」를 운 좋게 탄 것으로 알았던 슬롯머신 업자들이 막차를 탄 사실을 정씨 사건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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