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비판 지양… 진정한 극일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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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일보 4월30일(일부지방 5월1일)자 독자의 광장면에 실린 차형수씨의 글「저질 일본만화 침투, 원천 봉쇄」를 읽고 몇자 적는다. 나 역시 불법으로 수입·유통되는 일본만화에 대해 우려하지만 요즘 언론에서 보도하는 일본만화 비판에는 근본적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일본 만화가 왜 그토록 어린이·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부 성인층에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는지 냉철히 분석하진 않은 채 저질·폭력이란 수식어를 붙여 감정적 비난에만 급급한 대응 자세는 문제가 있다. 물론 불법 유통되는 일본만화들엔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섬세한 그림체, 개성 있는 인물들, 치밀한 이야기 구성 등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등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둘째, 일본만화 불법유통이 문제로 제기된 것은 80년대말『드래곤볼』이란 만화책이 정식 수입되면서부터지만 일본만화의 한국진출은 60년대부터 이뤄져왔다. 그것도 우리 손에 의해서 말이다.
방송사들은 예산문제를 들먹이며 어린이용 만화영화를 수입 방송했고, 국내 만화인들은 일본만화를 순수 한국산인양 위장 수입하거나 아예 표절 작품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이런 악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만약『드래곤볼』『피구왕 통키』『시티 헌터』같은 만화들이 일본산이 아닌 미국·유럽에서 수입된 것이라면 이토록 국내 언론들이 열을 올릴까. 만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요·소설·광고·TV쇼프로그램 등등…. 우리는 아직도 일본문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치하 36년간의 뼈아픈 과거와 한때는 일본의 스승이었다는 자존심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는 강한 감정적 배타감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제 전자 제품을 선호하며 일본 본토보다 더 왜색적인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일본 잡지를 보며 패션감각을 키우고, 화투로 여가를 보낸다. 하지만 말로는「쪽바리」등을 외치며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이젠 좀더 냉정하고 성숙한 대일 자세가 필요하진 않을까.【이응석<서울 서초구 방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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