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굴지의 거대기업들이 경영 몸살을 앓고 있어 이제는 대기업의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까지 대두하고 있다. 그동안 거대기업은 일류기업의 동의어쯤으로 인식됐었다. 또 야망 있는 기업들의 한결 같은 목표도 거대기업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국제경제 환경은 오히려 지금까지 대기업이 열망하던 방향에 맞춰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은 거대기업의 붕괴조짐과 함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는 현재 잇따라 신기술이 개발, 보급되고 무역장벽도 낮춰지고있다. 자금조달 시장도 열리고 소비자의 취향도 표준화되는 추세다. 이 같은 추세는 조만간 극소수의 거대 기업군이 국제시장을 독과점해 버릴 것이라는 예측마저 낳았었다.
그러나 거대기업의 표본이라 할 IBM·제너럴모터스·필립스 등 미국 및 네덜란드의 거대기업들은 파산지경으로 몰려 문책성 경영진 교체, 유례없는 감원 등 제몸 추스르기도 바쁜 형편이다. 일본의 마쓰시타, 독일의 다이믈러벤츠 등 대기업들도 조직재편·감량경영에 나서는 등 위기극복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주간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는『1993년부터는 대라는 말이 더 이상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머지않아 오히려 실패했다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고 단언했다.
이 같은 현상은 대기업이중소기업을 경쟁대열에서 따돌릴 수 있었던 최대의 무기, 즉「규모의 경제」가 빛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유통체계를 통한 상품당 비용절감효과로 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 논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히려 거추장스런 것이 되고 말았다. 구성원들은 거대한 조직내의 톱니바퀴에 파묻혀 성취동기를 상실하고 관료화에 따른 조직의 경직성이 두드러지는 등 비대한 조직의 비용이 전에 없는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거대기업이 오히려 중소기업을 닮으려고 애쓰는 양상마저 보인다. 조직을 사업단위별로 독립시켜 운영하는 방식의 도입이 그 한 예다. 최근 라이벌 대기업들간에 기술개발이나 시장개척을 위한 공동투자, 기술협력 계약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스스로의 몸집 비대화를 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회사의 인수나 합병 등 조직 비대화 현상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만은 거대 기업화가 여전히 열망의 대상인 것 같다. 대기업반열에만 오르면 어떤 보험보다 든든한 보호막 속에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연쇄도산, 대규모 실업, 국가의 신용 추락 등을 막아야 한다는 구제 논리가 나오고 국가 차원의 구제책이 뒤따르는 것이 공식화되어 왔다. 이는 경제논리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어야 할 기업이 비경제적인 요인에 의해 버텨 가는 기현상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공룡처럼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는 변화된 환경에서 우리만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이기원<국제부>】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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