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영화의 거장 스웨덴 베리만 감독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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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左> 감독과 그의 연인이었던 배우 리브 울만.[AFP=연합뉴스]

스웨덴 출신의 명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30일 스웨덴 파로섬에서 타계했다. 89세.

현대 예술영화의 거장인 베리만은 평생 신과 구원, 죽음과 실존 등 형이상학적 주제를 파고든 ‘영상철학자’다. 전성기인 1960년대에 일련의 실존주의 영화로 예술영화계는 물론이고 서구 지식사회를 매료시켰다. 그로 인해 모더니즘 영화의 전통이 생겼다는 평도 받았다.

베리만의 영화는 사색적인 주제에 ‘북유럽적 침울함’으로 요약되는 영상미가 특징이다. 칸·베니스·베를린 등 세계의 주요 영화제를 휩쓸었다. 97년 칸영화제에서 공로상격인 ‘최고종려상(Palm of the palms)’을 받았다. 조금의 타협도 없이 철학적 성찰을 스크린에로 옮긴 거의 유일한 감독이라는 평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리만은 어려서부터 철학적·종교적 환경에서 자랐다. 연극 연출로 출발해 영화와 연극을 오갔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긴 것은 57년작 ‘제7의 봉인’(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중세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한 기사가 죽음과 체스 게임을 벌이는 형이상학적 우화다. 이어 ‘산딸기’(58년 칸영화제 감독상·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처녀의 샘’(60년) 등을 연출했다.

베리만의 형이상학은 좌파 평론가들로부터 지나친 현실외면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스웨덴의 TT통신은 “스웨덴이 이따금 신경증환자의 나라로 비치는 것은 영혼의 미로에 대한 베리만의 분석에 책임의 일단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베리만은 중년 이후 가족,여성의 억압, 사랑 등을 즐겨 다뤘다. 모성신화에 도전해 충격을 던진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가을소나타’(78년), 자신의 고향인 웁살라를 배경으로 한 가족이야기 ‘화니와 알렉산더’(82년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60여 편의 영화와 100여 편의 연극을 발표했다. 스웨덴 여배우 리브 울만과 연인이었으며 5차례 결혼 생활을 했다. 그리고 평생 모성애에 집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은 “(베리만 영화에 대한) 어떤 해설도 일종의 건방이다. 그의 영화는 영화사의 거대한 등대로 그 자체로 서있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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