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의 칼 「노심」도 겨냥했나/대형비리 처리싸고 관심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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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역없다” 주변 곁가지부터 치기/청와대선 “안심하세요” 메시지설
사정바람이 과연 노태우 전 대통령에까지도 미칠 것인가 아닌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사정당국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의도적인 「노 겨냥설」은 극구 부인했다. 결코 어떤 의도를 갖고 노 전 대통령이나 그 주변을 파헤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혹시 딱 떨어지는 건이 드러난다면 몰라도…』라는 단서가 붙지만 그것 역시 혐의가 있으면 성역없이 조사한다는 법운용상의 원론을 되풀이한데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어떤 의도없다”
『댁을 겨낭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심하세요』라는 메시지는 이미 청와대로부터 노 전 대통령측에 간접 전달됐다는게 정설이다.
그런데도 연희동의 사정권 진입가능성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꾸준히 나돈다. 혹자는 집념강한 김영삼대통령의 개성에서,어떤 이는 최근의 일련의 정황에서,다른 이는 통치자의 의중을 귀신같이 알아 처리해주는 한국적인 사정풍습이 과연 얼마나 달라졌겠느냐는 점에서 각각 노 겨냥설의 단서를 찾고 있다.
겨냥을 했든 안했든 지금 노 전 대통령 주변에 떨어지고 있는 산탄 혹은 유탄은 여러 갈래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 은행법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노소영씨 부부의 부친·장인이다. 정부는 국회답변을 통해 이들 부부가 귀국하는대로 스위스은행 인출여부 등을 조사해 처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빠찡꼬사건 수사과정에서는 87년 대선당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가 주도한 단체 태림회에 정치자금 3억원을 주었다는 혐의자의 진술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현재 특별감사가 진행중인 율곡사업 당시의 최고 결재권자였다. 일이 있을때마다 언론에서는 P씨니 K씨니 하며 그의 친인척들을 거론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국회대로 야당 주도로 그를 목표삼은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6공비리청문회를 열라는 주장에서부터 대선당시의 정치자금,재산공개문제 등이 연일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본회의에서는 79년에 9사단을 끌고 서울에 진입한 일(12·12사태)까지 거론됐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런저런 의혹설에 대해 변호했다. 『그 분도 통치에 필요한 소규모의 자금정도야 조달이 돼서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비리로 분류될 만큼 엄청난 비자금은 없었다. 거액의 비자금을 부하들 모르게 조성하기는 어렵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정작업이 막판까지 가더라도 노쪽이 직접적으로 뒤집어 쓸 부분은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달리 의도를 갖지 않고 사안별로 다루되,드러나면 물론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의 관련사실이 나올까봐 겁난다는 의견도 있는게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나라 전체가 청산정국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고,현 정권으로서는 경제회복 등 해야 할 다른 과제에 대한 집중력이 분산되는 부담과 함께 만의 하나라도 김 대통령에게 불똥이 튀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다.
○드러나면 손대
그는 최근의 군비리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엉뚱한 부작용을 예로 들었다. 『조사과정에서 비리사실이 나오는 대로 처리하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군관계자 등 내막을 익히 아는 「집안식구」들의 반응은 일반 국민들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잡아 넣어야 할 사람은 정작 따로 있는데 왜 비리정도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장군들을 잡아 들였느냐는 것이었다. 조사하는 입장에서야 진술에 나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일선에서는 본말이 바뀌었다는 비판이 무성해 매우 곤혹스러웠다.』
「엉뚱한 부작용」은 이를테면 핵폭탄 투하와 같은 것으로 비유된다. 정확히 투하하자면 폭격기의 고도를 되도록 낮춰야 하지만 너무 근접했다가는 열과 폭풍,그리고 방사능의 피해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청문회에 세워지거나 하는 일까지야 없겠지만 그가 사정대상에서 미리 배제돼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이와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김 대통령의 스타일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반박이다.
○신뢰·신의 상실
이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라며 그를 군사작전에 익숙한 전임 대통령들의 통치방식에 맞추어 해석하다가는 오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정황이 전술전략 개념에 따라 미리 계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변화에 대응하고 판세를 휘어잡는 능력이 탁월한 김 대통령이 무원칙하게 사정정국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이 말은 노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현 정황이 아직은 강건너 불이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순간에 불길이 강을 건너올지 속단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사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가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신뢰나 신의를 못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거나 국회증언대에 세우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김 대통령이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김 대통령은 대선과정을 통해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누차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주변의 권력남용이나 비리에 관해서는 냉정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하에서 친인척이 「한탕」하고 물러나는 것을 후임자가 눈감아 주면 결국 한국도 멕시코와 같은 정치부패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정의 칼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갈것이냐,말것이냐는 노 전 대통령이 자기 주변에 죄어오는 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분명 친인척을 향한 포위망은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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