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찡꼬 비호세력 누구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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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빠찡꼬 대부 정덕진씨에 대한 수사의 초점은 결국 그가 각계의 실력자들과 어떤 연관을 맺어왔는가를 밝히는데 있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진전되면서 검찰주변에는 정씨의 검은 돈을 받으며 그의 비호세력이 되어왔다는 정계·관계 실력자 30여명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중에는 국회의원,판·검사,경찰간부,군장성 등이 포함돼 있다.
아직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단계여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빠찡꼬의 성격,폭력과 권력과의 관계,그리고 직·간접으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미뤄볼때 이 사건이 단순한 탈세사건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수사담당자가 아니더라도 정씨 뒤에 비호세력이 있으리란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지난 91년 국세청은 정씨 등 빠찡꼬지분 소유자들이 1백80억원의 세액을 탈루한 사실을 밝혀내고도 수사기관에는 고발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거액의 세액탈루가 어떻게 고발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봐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빠찡꼬는 그 허가를 얻는 것부터가 권력의 「줄」과 뇌물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허가가 난 빠찡꼬는 거개가 승률조작·탈세 등 탈법운영되고 거기에서 생긴 이익금이 조직폭력의 유지비와 비호세력에 대한 뇌물로 들어간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러한 공공연한 비리가 용인되고 보호받기까지 해온 것은 그 비리를 적발하고 처벌해야 할 측이 바로 그 비호세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친다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구조가 재산공개 때와는 또다른 각도에서 그 단면을 드러낼 것이다.
정씨 형제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수사검사의 사법시험 동기,과거의 직속상관,최근 개업한 고검장 등을 변호사로 선임해 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법적으론 문제될게 없으나 그것이 인간적인 약점을 이용하려는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변호사 선임에 응한 것은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상 문제는 없는 것인가.
어쨌든 이제 빠찡꼬의 흑막을 벗기느냐 못벗기느냐는 수사검사의 엄정한 의지에 크게 좌우되게 됐다. 변호사도 변호사려니와 정씨와 관련이 됐다는 전·현직 검찰간부만도 10여명이나 거명되고 있는 상황이라 수사검사가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대단할 것이다. 과거처럼 권력 고위층에서부터의 압력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검찰 내부 또는 전직 검찰간부일 것이다. 그런만큼 검찰 수뇌부는 수사검사를 외압에서 보호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피아와 정계의 유착을 철저히 파헤치고 있는 이탈리아 검찰의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를 우리들은 지켜보아왔다. 우리 검찰도 이번 사건을 한국판 「마니 폴리테」로 삼아 사회비리의 척결과 함께 검찰의 위상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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