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힘 쏟겠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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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작가 한남규씨가 데뷔 34년 만인 지난해 첫 창작집 『바닷가 소년』(창작과비평사 간)을 펴냈을 때 문단은 우정어린 찬사를 보냈다. 58년 『사상계』를 통해 문단에 나온 한씨는 신문·잡지의 명 편집자로서 창작보다 남의 작품을 관리하는 일로 문단 한 모퉁이를 살아왔었다.
데뷔작인 「실의」에서부터 91년 발표한 「강 건너 저쪽에서」까지 모두 14편의 단편을 묶은『바닷가 소년』에는 지난 40여년 우리의 곤궁했던 역사와 삶을 껴안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함께 문학관리자의솜씨다운 엄격하고 절제된 소설미학이 농축돼 있어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본다며 문단은 아낌없이 한씨를 치켜세웠다. 이에 고무됐음인지 나이 50중반을 출발선으로 삼아 이제부터라도 창작에 좀더 힘을 쏟겠다던 한씨. 그가 4월30일 간암으로 타계했다.
2일 아침 한씨는 서울 용미리 시립묘지로 가 곤고하게 이끌어 왔던 혼을 뉘었다. 백낙청·천승세·남정현·구중서·한승헌·이문구·이시영·이문열·김사인씨 등 여러 문인들이 오락가락 하는 비로 스산한 그의 마지막 길을 말없이 함께 따라갔다.
한씨의 영안실과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그러나 그의 죽음 못지 않게 그가 남긴 가족, 병석에 누운 부인과 대학1년, 고교2년의 두 아들을 안타까워했다.
작가인 부인 이순씨(44)는 8년여 째 뇌막염으로 병석에 누워있다. 한씨와 이씨는 72년 결혼했다.
결혼하기 직전 일간지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돼 병아리 작가로 한참 꿈이 부풀어 있던 이씨는 그러나 그때부터 남편과 가정을 위해 소설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7년여의 공백 끝에 이씨는 79년 신춘문예에 중편이 당선되면서 다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싱싱한 감수성과 발랄하고 지적인 문체로 80년대 초반 여류 소설계를 휘어잡은 이씨는 곧바로 일간지에 장편을 연재하는 영예와 인기를 얻게됐다. 뿐만 아니라 다시 공부를 시작해 모교인 연세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청주대교수자리도 얻었다. 아내와 주부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와 교수로 스스로 밝혔듯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리던 이씨는 85년 갑자기 뇌막염으로 쓰러졌다.
아내가 식물처럼 쓰러져 누운 병실에서 출퇴근하며 한씨는 이씨를 지극히 간호했다.『부인보다 당신 건강이 더 문제』라는 의사의 말을 그냥 웃어넘기며 병구완에 몰두하던 한씨도 급기야 간경화로 드러눕고 말았다. 남편의 병구완 덕에 식물인간에서 의식 없이 조금씩 거동은 할 수 있는 상태로 병세가 나아진 이씨는 이날 남편의 죽음 앞에 향도 피우고 곡도 하는 기적 같은 정신력을 보여줘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그런 아내를 위해 한씨는 작년 말부터 『병든 아내에게』란 제목으로 소설을 쓰려했다.『편지 형식으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싶다. 작고 예쁜 노트 한 권만 사다달라』고 후배에게 부탁했던 한씨가 그 「순애보」를 맺지 못하고 가버렸다. 간경화에서 간암으로 죽음에 이른 한씨의 병구완이 이씨의 쾌유와 작품활동 재개로 맺어졌더라면 하는 주위의 안타까운 바람만 남긴 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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