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근왕주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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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사형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중국 뤼순형무소(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뀜) 내 현장.

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박환)와 중국 다롄(大連)대 한국학연구원(원장 왕원보), 뤼순(旅順)형무소박물관(관장 화원구이)이 공동 주최한 학술회의가 19일 다롄대에서 열렸다. 주제는 ‘다롄·뤼순 지역과 한인(韓人)민족운동가’. 이 같은 주제라면 일제의 폭압성과 독립운동의 저항을 대립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학술회의는 그런 이분법을 넘어서는 토론을 보여주었다. 뤼순감옥이 안중근(1879~1910) 의사와 신채호(1880~1936) 선생이 최후를 맞은 곳이란 점에서 달라진 세상을 엿볼 수 있었다.

토론은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갈렸다. 안 의사가 지키고자 했던 국권(國權)의 실상은 무엇일까, 근대 공화정을 지향했는가, 아니면 왕정 회복을 고대했는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해석이 잇따라 나왔다.

“안중근 의사는 충직한 근왕(勤王)주의자였다.”(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
 이날 학술회의를 뜨겁게 달군 발언이다. 오 교수는 “안 의사가 남긴 휘호에 유교적 가치를 담은 내용이 많고, 가장 존경한 인물이 최익현·이상설이라고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익현은 위정척사파이고, 이상설은 고종 복위를 위해 노력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김권정 숭실대 겸임교수도 “안 의사의 사상에서 근대성을 찾아내려고 하는 가운데, 과도하게 해석한 점은 없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전적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박환 회장이 나서 “안 의사가 러시아에서 보낸 2년 등을 포함해 그의 삶 전체를 통관해 판단했으면 한다”며 분위기를 조율했다.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는 안 의사의 옥중 공판투쟁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안 의사가 ‘한국이 독립되지 않는 것은 군주국인 결과에 기인하며, 금일 한국의 쇠운을 불러온 책임은 황실에 있다’고 했다”며 안 의사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공판 과정에서 일본인 검찰관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시혜적 문명개화론을 내세우자 이에 맞서 안 의사가 내놓은 국권수호론은 이후 항일 독립운동의 이념적·도덕적 모델로 자리잡았으며, 오늘의 시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허동현(종합토론 사회자) 경희대 교수는 “성급한 결론은 자제하자. 독립운동사 연구도 기존 방식을 답습해선 부족한 게 많다는 점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자”고 마무리했다.

다롄대 유병호 교수는 “다롄시에는 미공개 한인 민족운동 관련 자료가 많다. 일본헌병대 문서자료가 모두 공개됨으로써 만주지역 한인민족운동이 새롭게 재조명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용근 다롄 안중근기념사업회장도 “안 의사의 사형장과 묘소 등에 대한 정확한 고증조차 안돼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다롄(중국)=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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