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현지 소식 이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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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탈레반 인질 사태를 둘러싼 현지 소식이 연일 혼선을 빚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어오는 뉴스는 상충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랍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도 큰 오보를 냈다. 알자지라는 28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수감자 4명을 석방키로 합의했다"고 보도했으나 한 시간 뒤 "사실이 아니다"고 정정했다.

두바이에 파견된 한 한국 외교관은 29일 "이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로이터 통신은 "탈레반이 인질 수용 장소를 자주 옮기고 있는 데다 인질 구출작전 등 공격에 대비해 의도적으로 역정보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질 건강 소식 제각각=현재 피랍자 가족들의 최대 관심사는 그들의 건강 상태다. 관련 뉴스가 쏟아지지만 어느 것이 맞는지 종잡을 수 없다. 자칭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모두 건강하다'고 했다가 '한두 명은 아프다'를 거쳐 지금은 '17명이 아프다' 고 주장하고 있다.

억류 장소에 대한 얘기는 더욱 헛갈린다. 아마디는 '한 곳에 억류돼 있다'고 말했다가 '2명이 한 조로 11곳 분산 배치'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26일 미국 CBS방송과 전화인터뷰한 피랍자 임현주씨는 '남녀 2개 그룹으로 분산 수용돼 있다'고 말했다. 28일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한 피랍자 유정화씨는 자신이 있는 곳엔 '4명이 함께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미국 CNN과 일본 NHK방송은 "인질들이 3개 그룹에 분산 수용돼 있다"고 보도했다.

◆심리전에 휘말리나=한 사람인 대변인과 인터뷰를 해도 언론마다 다른 얘기가 나오면서 탈레반 측이 고도의 심리전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탈레반이 이같이 헷갈리는 정보를 흘리는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정부군과 다국적군에 의한 무력 구출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얘기다. 아랍 일간지 알하야트는 "자신들의 상황을 감추기 위해 엇갈린 정보를 흘리면서 피랍자들을 조를 바꿔가며 계속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29일 가즈니주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22명의 인질을 2~3명씩 분산해 감금하고 있다"며 "이런 조치는 아프간 정부군에 의한 무력 구출작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알자지라도 헛다리 짚어=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 오사마 빈 라덴 등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부를 독점 인터뷰해 유명해진 알자지라는 이번 오보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이런 소동은 아프간 정부 관리들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자지라는 인질 납치.억류 장소인 가즈니주 관리의 말을 인용해 맞교환 방침을 처음 보도했지만, 아프간 정부 관리들은 이를 부인했다. 한국 정부가 소통해야 할 아프간 정부의 협상 채널도 단일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정부의 협상을 어렵게 하는 큰 이유다.

두바이=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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