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반상 여왕 박지은 "남자와 겨루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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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처녀 박지은4단이 첫 세계 제패에 성공했다. 박4단은 7일 중국 상하이(上海) 왕바오허호텔에서 벌어진 2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 결승전에서 파워 넘치는 행마를 앞세워 같은 한국의 윤영선(26)3단을 2대0으로 완파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5일의 첫판에선 불리한 형세를 뒤집고 백 3집반승. 7일의 2국에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아슬아슬한 접전 끝에 흑 1집반승. 실력은 팽팽했으나 운이 따라준 박지은4단이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과 함께 상금 3천만원을 챙겼다.

윤3단은 지난해 하오줴(豪爵)배 결승에서 박지은을 2대0으로 꺾고 우승했던 강자다. 그러나 이번 결승전에선 첫판에서 쾌조의 흐름을 살리지 못하고 역전패당한 것이 치명타가 되었다.

이번 박지은의 정관장배 우승은 한국 여자바둑의 급성장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그동안 여자바둑은 중국 출신의 루이나이웨이9단의 독무대였으며 장쉬안(張璇)8단을 앞세운 중국세와 관록의 일본세, 그리고 젊은 한국세가 맞서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번 정관장배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대결에서 압승했고 무적으로 군림해온 루이나이웨이 벽마저 박지은에 의해 허물어졌다.

루이나이웨이를 겁내 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일본 여자바둑은 어느덧 최하위로 전락하고 용기있게 루이를 받아들인 한국 여자바둑은 루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정진한 끝에 꼴찌에서 정상으로 올라섰다. 앞으로 세계여자바둑은 루이9단.박지은4단, 그리고 얼마 전 루이를 꺾고 여류명인이 된 조혜연4단의 트로이카시대가 될 것이란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지은4단은 우승 직후의 인터뷰에서 "루이9단을 넘어 세계대회서 우승한다는 1차 목표는 오늘로써 이뤘다. 이제는 같은 또래의 남자 신예강자들을 따라잡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소년 같은 인상에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박지은은 김동엽7단에게 바둑을 배워 97년 프로가 되었다.

2000년 여류명인전에서 우승했다. 힘이 강하고 수읽기가 정확해 '여자 유창혁'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조훈현9단과 유창혁9단을 한번씩 이긴 적이 있고 도요타배 세계대회에서는 일본 명인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을 격침시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대림식당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산다. 취미는 볼링.

박치문 전문기자

◇하이라이트=결승전 1국. 흑을 쥔 윤영선3단이 50집의 확정가에다 공격권마저 쥐고 있어 실리와 두터움 양면에서 앞선 형국이다.

그러나 이때 흑1로 한점을 살린 수가 흐름을 뒤바꾼 통한의 패착. 백△ 8점을 잡자고 했으나 박지은4단이 개의치 않고 백2로 틀어막자 양곤마가 동시에 해결되면서 좌변 일대가 백의 땅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흑1로 A에 뛰었으면 계속 흑이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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