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양귀자 "잇단 입시부정·투기 과연 남편은 몰랐나"5월 가정의 달에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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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가족이 공개되고 있다. 뒤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았던 유명인사들의 가족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우리는 신문만 보고 앉아있어도 부동산투기의 전문가가 누구의 부인인지, 누구의 아들이 내신성적 몇 등급에 얼마의 돈을 얹어 대학생이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많은 돈을 들여 부동산을 사고 팔고 했던 아내의 행적에 대해서, 대학 갈 성적이 못되는 자식을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던 아내들에 대해서 남편들은 한결같이 몰랐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런가.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다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한다. 몰랐다고.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하고있는 남편들의 심리를 한번 분석해본다. 그렇게 말함으로 해서 아녀자란 한없이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더냐는 뜻을 은근히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말함으로 해서 자신은 오직 일밖에 모르는 사람인 것을 강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소한 가정 일은 무시해버린 채 막중한 바깥일에만 매달렸던 대장부였음은 아무리 과시해도 손해보지 않는 것이 우리네 풍토인 까닭이다.
하기야 아내를 하수인 삼아 몇 차례씩 정답을 유출한 경우도 있는 판에 『나는 전혀 몰랐다』의 경우는 체면까지 버린 것은 아니니 좀 나은 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체면을 위해 아내의 체면 따위는 거침없이 버려도 좋다는 남편들의 그 위악적인 태도는 보기에 씁쓸하다. 그보다 더 한심한 짓은 아내의 자존심은 남편의 사회적인 체면을 위해 그렇게 구겨져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들의 만연이다. 「그래야 남편의 재기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그 아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이 5월에, 가정의 달인 이 5월에 부득불 그것을 의심하고자 마음먹는다. 가정은 아내 혼자만이 꾸려 가는 공동체가 아니다. 바깥에서 제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는 남편이라 하더라도 가정 내에서의 책임을 방기했다면 비난방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 책무 속에는 아내와 자식과의 끊임없는 정신적 소통의 노력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남편과 자신의 입신출세가 곧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아내의 저지르기 쉬운 잘못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온 남성중심의 가치 매김에 의해 이 사회의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편과 자식에게 최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에 맹목적으로 몰두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하물며 그런 아내가 바로 유능한 아내라는 평판이 공공연하게 유통되는 사회구조아래서는 여성들만의 각성만 가지고는 도저히 그 허위의 늪을 빠져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돈에 탐닉하고 그 돈으로 자식의 장래까지 매수하기를 서슴지 않는 가족이기주의의 극단적인 모습들을 여기 저기서 확인하다 맞게 되는 5월, 모든 아내와 남편들은 뜨끔하다. 하긴 누구의 마음이 더 뜨끔한지를 따질 계제도 아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우리의 가정들을 복구하기 위해선 아내나 남편 할 것 없이 서둘러 삽질을 해야할 형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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