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한파에 금융 위축/기업자금 안풀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배정해놓고 대출 몸사려/행정기관선 재량권행사 꺼려 중기애로
금융을 주요 표적으로 삼아 진행됐던 「경제 사정」이 지난 주 중반을 고비로 일단 한 수를 접었다지만,금융과 경제행정 곳곳에 미친 사정 한파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덩치 큰 시설자금은 물론,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자금대출도 곳곳에서 막힌 채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금융기관의 저축 전선에도 냉랭한 분위기가 깔린 채 실적이 예년에 못미치고 있다.
특히 규제완화의 「바람」이 인·허가 제도를 정비하고 서류를 간소화하는데는 크게 기여했으나,그보다 더 중요한 「도와 주고 되게 하려는」는 일선 행정기관의 「행정마인드」는 더 위축된채 돌아앉게 만든 경우가 많아 중소기업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내로라 하는 모 대기업은 지난 3월말에 이미 올해 쓸 시설자금 수백억원을 거래은행과 협의,내부적으로 배정 받았다. 이에따라 그간 이 기업은 거래은행에 신탁과 정기예금을 들어주고 신용장개설을 돌려주는가 하면 채권도 사주는 등 「협조」할 부문은 별 불만 없이 「협조」했다. 정작 이 기업이 화가 난 것은 이미 시설 투자가 시작됐고 발주처에 대한 대금지급도 시작됐는데 은행측이 협조만 받아갔지 시설자금을 아직 한 푼도 집행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이 기업은 은행측이 최근의 사정 분위기 때문에 아직 품의서도 돌리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골재 채취업을 하는 중소기업인 K건설은 경기도의 한 군청과 지난 몇년간 수의계약으로 한강의 골재를 파내는 사업을 해왔다. K건설은 이 지역의 골재 채취를 위해 그간 약40억원에 이르는 시설투자를 했었다. 그러나 군청측은 올해부터 갑자기 수의계약은 곤란하며 경쟁입찰을 해야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정부의 예산회계법에 따르면 K건설의 경우에는 얼마든지 법에 따라 일선 행정기관의 「재량」으로 수의계약을 할 수가 있으나 군청측은 중앙부처의 유권해석을 「문서」로 받아오지 않는 한 계약을 연장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때문에 올들어 약 4개월간 K건설은 일을 하지 못해 부도까지 걱정할 형편에 몰렸었다.
▲중견기업 대표 J씨는 최근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시책에 따라 종전보다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 많으나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금융자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를 개선하고 지점장 전결 한도를 늘려 시달하고 있으나 일선 점포장들이 위축되어 민감한 시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영업을 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