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DVD 골라드립니다’-극락도 살인사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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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14면

김한민 감독의 작품을 처음 본 건 2000년 즈음의 한 영화제에서였다. 거창한 주제를 구겨넣거나 폼만 잔뜩 잡은 단편영화들 사이에서 좀 다른 느낌을 풍기는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는 흥미로운 대중영화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김한민은 근래 한국영화 중 드물게 잘 만든 상업영화로 멋지게 장편 데뷔식을 치렀다. ‘극락도’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공포영화·사회 드라마·코미디, 그리고 감독 특유의 농담을 더해 맛있는 비빔밥으로 완성되었다.

1986년, 남쪽의 고립된 섬에서 십여 명의 주민이 하나 둘 죽어간다. 범인은 누구이며,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괴담 안에 80년대 대한민국의 흉흉함을 잘도 기록한 ‘극락도’는 민중을 대하는 시선 또한 만만찮다. 일개 지식과 권력을 가진 하찮은 인간에 의해 순박한 주민이 희생당한다는 설정은 시대의 알레고리로 읽기에 모자람이 없다. 명분 때문에 굶어 죽은 여귀를 삽입한 것도 그런 설정과 어울린다. ‘극락도’는 살해당한 우리의 이상향을 슬퍼하는 영화 같다.

DVD의 음성해설은 두 가지다.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목소리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뒷이야기를 풍부하게 들려주는 반면, 감독과 제작자의 것에서는 예산 때문에 현장을 쥐어짠 제작자와 연출의 키를 놓치지 않으려 고심한 감독 사이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 번째 디스크의 부록은 비밀문서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9개 제목별로 메이킹필름(30분), 미술<2219>분장<2219>의상 이야기(14분), 19개의 삭제장면(25분), 스틸 갤러리 등과 하나의 이스터에그(메뉴에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부록)를 수록했다. 부록의 끝부분에 특별히 준비된 단편영화 ‘갈치 괴담’(2003년, 19분)을 놓치면 안 된다. 감독의 심성이 담긴 저예산 독립영화로서 기괴하게 슬픈 엽기 드라마다.
DVD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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