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구호 사라진 노동절 집회(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1일 오후 3시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
「노동운동은 곧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막연한 등식으로 58년 정부에 의해 금지된 노동절 집회가 문민정부 아래 35년만에 처음으로 공권력과의 충돌없이 치러졌다.
울긋불긋한 깃발과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운동장을 가득 메운 3만여명의 노동자들은 주최측이 선창하는 구호에 맞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대회장이 떠나갈 듯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김영삼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지만 재벌위주의 신경제정책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고통분담」 이데올로기는 극복돼야 합니다.』
「투쟁」 「쟁취」 등 노종자집회에서 으레 등장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지만 「타도」 「분쇄」 등의 용어는 사라져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첫 공식 집회라는 사실에 고무된 듯 참가자들의 드높은 열기때문에 예정을 1시간이나 넘겨 오후 6시쯤 끝난 대회는 여의도광장까지 평화행진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노동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않기 위해 최소한의 교통질서요원만 투입하고 대부분의 병력은 이면도로에 배치,혹 있을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흰 티셔츠와 노란색 리번을 단 5백여명의 노동자 「질서유지대」도 경찰이 허용한 차선에서 대열이 이탈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한편 50여명의 「청소전담반」은 대회장주변을 말끔히 청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의도광장 앞에서 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내년 5월1일은 단지 집회만이 허용되는 비공식적 노동절이 아니라 공식적 노동절로 지정되기를 바란다』며 문민정부 출범이후 최대규모의 집회를 마감했다.
불필요한 충돌·희생을 동반하지 않은 문민시대의 새로운 시위문화,그 가능성을 엿본 하루였다.<이현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