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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Hot TV] 개그계 '미다스의 손' 김용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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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면

개그맨 김용만(37). 그가 언제부터 그토록 우리를 웃겼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제부터 그리 많이 TV에 나왔는지 의식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듯싶다. 아니 정말 그가 인기가 있긴 한 것인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그가 지난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 최고 영예인 '대상'을 수상했다. 2년 연속에 모두 합쳐 세번째 영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브레인 서바이버'와 '대단한 도전', 섹션 TV 연예 통신,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물론 최근 종영된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까지,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한결같이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MBC 간판 오락 프로그램이다. 방송가에선 물이 오를 대로 올랐고, 최고의 전성기라는 평가지만 정작 시청자에겐 스타라기보다 그저 친근한 옆집 아저씨로 다가온다.

지난 2일 '브레인 서바이버'의 녹화가 있던 MBC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둥글둥글한 것은 단지 외모와 이미지만이 아니었다. 사진 촬영하느라 한시간이 넘도록 1백여가지의 포즈를 요구했지만 단 한번의 짜증도 없었다. "저도 이젠 애 아빠니 좀 점잖게 찍히고 싶지만 팬들은 이런 모습을 원하겠죠"라며 민망할 만큼 장난기 어린 표정도 지었다. 프로의 냄새가 났다.

그는 1991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에 입문했다. 현재 개그계 최고 파워군단이라는 김국진.유재석.남희석.박수홍 등이 그의 동기다. "고교 2학년 때부터 개그맨이 되고 싶었어요. 공부하기 싫고 그저 놀기 좋아하는 '날라리'였죠. 그래도 웃기는 재주는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꿈을 위해 서울예전 방송연예과에 진학했고, 방송반에도 가입했다. 1학년 때부터 교내 축제 MC를 보는 등 그의 끼는 넘쳐났다. "1학년 마치고 군대에 갔습니다. 사실 군 문선대가 현재의 저를 만들었죠. 실전보다 더 좋은 연습은 없으니깐요. 시커먼 군인 몇 만명이 모인 무대에도 서 보고, 섬마을 할아버지.할머니 앞에서도 공연을 했으니깐요. 몽땅 합치면 3백회는 족히 넘을 겁니다."

문선대 시절에도 휴가를 나와 두번이나 개그맨 시험을 봤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였다. 결국 대학 졸업 후 용인 자연농원에서 이벤트 MC로 사회 첫발을 내디뎌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개그맨 되는 게 꿈이었으니, 개그맨이 된 다음엔 조금 나태해지게 마련이죠. 전 계속 실패를 하다 보니 오히려 내공이 더 쌓여가는 느낌이었어요. 단순히 개그맨이 되는 게 아니라 정말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충분한 준비 덕에 데뷔와 함께 빛을 보는 듯했다. 주요 배역도 맡았고,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그와 콤비를 이룬 김국진의 대활약이었다. 뭔가 어설픈 듯하면서도 기상천외한 김국진의 황당 개그는 김용만의 존재를 가렸다. 특히 96년부터 2년간 김국진이 MBC 테마게임 등 모든 오락 프로그램을 평정할 때 김용만은 이른바 한물 간 프로그램만 맡았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도전 추리 특급' 등 그가 맡기만 하면 프로그램은 6개월 만에 문을 내려 한때는 '패전 처리용' 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그가 재기의 기회를 맞은 건 98년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코너를 맡으면서부터다.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 속에서 감동과 웃음을 끌어내야 하는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톡톡 튀진 않지만 자연스러운 그의 진행과 똑 떨어지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때가 제가 결혼하고 아들도 낳은 시기였어요. 원래 제가 아저씨 같은 스타일이잖아요. 총각 때는 외모와 이미지가 잘 어울리지 않아 부조화스러웠는데, 가정을 꾸리니깐 본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발휘될 수 있었던 거죠." 이후로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는 연예 생활 14년 동안 제대로 히트한 유행어 하나 없고, 개인기도 잘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김제동처럼 재기가 넘치지도 않으며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보기도 힘든 편이다. 그의 웃음 코드는 '흐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브레인 서바이버의 유호철 PD는 "보통의 개그맨들이 웃기려고 애를 쓰다 보니 오버하는 경우도 많고 억지 웃음을 강요하기도 한다. 반면 김용만씨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이 장점이다. 그러다 웃을 만한 상황이 생길 경우 먹이를 낚아채듯 강펀치를 날린다. 힘 조절을 아는 것이며 훨씬 더 고도의 웃음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결국 '튀지 않지만 결코 질리지도 않는' 그만의 독특한 색깔을 형성하면서 장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그가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데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의 매니저인 박진홍씨는 "청와대 영빈관에 가서도 떨지 않고 편안히 진행할 수 있고, 10대들의 감각에도 맞장구칠 수 있는 게 김용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제 웃음은 '휘발성'이죠. 그 상황에 웃기고 그냥 지나가면 되니깐요. 하지만 제 존재의 흔적조차 없앨 수는 없죠. 무슨 거창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것이 아니고 후배들에게 정말 웃음을 전달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고 싶어요. 우리들끼리 마음껏 찧고 까불면서 개그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야겠죠."

글=최민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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