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브란스 파업, 환자 요구 외면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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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일 시작된 세브란스병원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진료 기능이 사실상 올스톱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병상 가동률은 40% 이하로 내려가고 하루 80~100건 정도 시술되던 중증암 환자 수술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중에는 말기암 환자도 약 500명 포함돼 있다고 한다.

 노조 측은 응급실·중환자실 등의 필수업무는 유지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방사선사나 임상병리사의 80% 이상이 파업에 참가하면서 검사 기능은 마비상태다. 이 때문에 수술은 물론 응급환자에 대한 처치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환자와 보호자까지 나섰겠는가. 지난 24일 환자와 보호자 127명은 병원과 노조 측에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한 환자는 “몸 아프고 힘 없어서 큰소리를 낼 수도, 집회도 할 수 없다”고 썼다. 노사 모두 생명을 살리는 일을 본업으로 한다면 환자들의 이 같은 절규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노조의 태도를 보면 환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귓등으로 듣는 듯하다. 환자들이 편지를 쓰던 날 노조는 중노위의 권고안을 거절하고 25일부터 사흘간 ‘재택투쟁’이라는 희한한 파업을 결의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한 뒤 장기파업에 나서겠다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간호등급제나 다인병실 확대 등 노조 측의 요구안은 경영권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월권적 이슈다.

 연세의료원은 이달 5일 국내 병원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의 인증을 받았다.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 인증은 철저하게 ‘환자 중심의 병원’임을 입증하는 보증수표다. 하지만 환자들의 고통과 꺼져가는 생명을 외면하면서 어떻게 국제적 인증을 내세울 수 있는가.
 합법적인 파업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의 생명권보다 앞서는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병원 측도 환자 우선의 마음에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