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1백주년|관련자료·유적지발굴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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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을 맞아 그동안 잠자고 있던 관련자료 역사발굴작업이 활발해지고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서당 제자가 기록한 생생한 국한혼용일기가 최근 그 후손의 공개에 의해 빛을 본 것을 비롯해 보은취회가 열린 대도소의 돌성, 최후의 격전지로 2천6백여명의 동학군이 살해돼 파묻힌 집단매장지가 대학연구자들의 노력으로 확인돼 관심을 끌고 있다.
68쪽분량의 한지에 국한문혼용 붓글씨로 쓰인 『석남역사』는 동학혁명당시 전봉준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던 박문규씨(1879∼1955·호석남)가 후손들에게 남긴 회고록.
이 일기 갑오(1984)년 기록을 보면 『내나이 16세라 새해를 마지하야…초8일 말목장날이다. 석양판에 동내사람들이 수근수근 조금 있다가 통문이 왔다. 저녁밥후에 장터로 모이라고 기별이다. 여러동내 징소리 나팔소리 고함소리는 천지가 뒤흔들려 수천명 군중이 동내로 모라오매 고초군수 조병갑이 죽인다고 민요가 낫다. 수만군중이 사방으로 포위하고 도라갈재 군수 조병갑이는 정읍으로 망명도주하여 서울로 도망하였다.』(일부 현대표기)고 마치 판소리를 하듯 생생하게 고부민란의 초기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정읍군이평면장내리 우지마을에 거주하던 필자 박문규씨는 전봉준에게 천자문을 배운뒤 일생을 한학에만 몰두한 농촌지식인. 기록중 스승과의 첫 만남에 대해선 『전녹두선생님 전에 인사하고 하늘천 따지 거물현 누루황 전선생님 가르쳐준다』고 묘사하고 있다.
한편 동학관련 유적지는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가 보은군청의 용역의뢰로 제출한 「외속리서원 계곡문화유적보고서」를 동학1백년기념사업과 관련, 천도교측이 공개함으로써 알려졌다.
이 보고서는 보은집회당시(1893년 5월1일) 동학교도들이 장기농성을 위해 대도소 주위에 쌓았다는 돌성의 위치를 현속리국민학교 뒤편 옥녀봉 밑 일대로 추정했다.
보은군에서는 금년 9월까지 확인조사를 마치는대로 이 돌성 주변에 보은집회 기념비를 세울 계획인데 천도교측도 도소자리에 옛 기와집을 복원하는 한편 제2세교조 해월 최시형선생의 동상을 세우는등 성역화계획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있다.
한편 보은군 종곡리(북실마을)에 있는 동학군 집단 매장지는 오랜 추적끝에 확인된 것으로 동학군 북접의 활동상황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적지라고 신영우교수(충북대)는 높이평가했다.
최근 상주에서 발견된 상주소모영 유격장 김석중의 진중일기『토비대략』은 종곡리에서 전개된 상세한 전투경과와 함께 동학군 전사자 숫자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김석중은 이틀간의 종곡전투에서 일본군을 포함한 연합유격군이 동학군을 모두2천5백93명이나 집단 살해한 뒤 매장한 것으로 기록했다. 신교수는 『지금껏 알려지지않은 북접동학군 최후의 전투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공고 이 유적의 사적지 지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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