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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실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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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대테러 담당 고위 참모로부터 정보 보고서를 하나 받았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알카에다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9·11 이후 테러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됐다. 테러는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조만간 없어지지 않을 지속적인 골칫거리가 됐다. 이에 따라 테러에 대한 단죄도 예외 없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테러의 정의가 쉽지 않다. 한쪽에서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선 저항 투사로 불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테러를 정의하기 위해 동기를 따져 보는 것이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테러는 일반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이며, 정치적인 이유로 저질러졌고,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테러는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을 짓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이의를 제기한다. 작은 조직들이 벌이는 것만 테러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벌이는 테러는 존재하지 않는가?’하는 얘기다.

 이 질문은 많은 논란을 불렀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국제 정책의 기반으로 삼은 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원한 수단들 때문이다. 부시의 주장을 들으면, 테러와의 전쟁은 열쇠를 잃어버린 뒤 분실 장소로 추정되는 곳 대신 불빛이 비치고 있는 곳에서 그 열쇠를 찾으려 하는 술 취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요점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어떤 것을 찾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책을 보면 테러의 정치적 뿌리에 접근하는 것을 외면하고 대신 군사적 조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아마도 부시는 군사비 지출 확대가 테러의 정치적 뿌리와 맞대면하는 것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종류의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술 취한 사람이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것만큼이나 작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이라크 전쟁이 9·11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확신하겠는가. 또 누가 그 전쟁이 테러와 싸우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지금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뒤집어 말한다면, 이라크 전쟁이 더 많은 테러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부시의 실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부시는 자신이 끄겠다고 나선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을 뿐 아니라 적들에게 논란거리마저 제공했다. 부시의 말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들은 민주주의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부시는 자신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그는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훼손하고 있는가? 미국의 시민권 제한에서부터 치욕스러운 관타나모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부시는 전략적인 것은 물론 도덕적인 면에서도 실패했다. 바로 이러한 도덕적 실패가 전략적 재앙을 가중시키고 있다.

 불법적인 인신 구속, 민간인 폭격, 고문과 모욕 행위는 보통사람을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주요인이다. 절차와 국제법이 합리가 아닌 편리에 따라 해석되고 있다. 법과 인권을 존중하면 테러와의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오히려 효율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법과 인권을 존중할 때만 가능하다.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해야 한다. 그들 자신의 안전도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과 국제법도 중시해야 한다. 만약 미국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판단되면 부시 정부에 쓴소리를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범이 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그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 문제연구소장

정리=박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