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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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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도쿄 지사에서 일하던 한국인이 서울 본사의 고위 간부로 발탁됐다.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들이 축하 겸 환송연을 열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이 든 일본인이 조언했다. “회사에서 위만 쳐다보면 아래가 안 보이고, 아래만 보면 앞이 안 보이게 됩니다.”

 10여 년 전 건네 들은 이야기지만 되새길수록 의미가 깊다. 가령 더 이상 윗자리를 넘볼 필요가 없는 기업 오너라면 그에게 ‘위’는 기업의 이익일 것이다. 그러나 이익만 좇다 보면 ‘아래’에 해당하는 임직원을 이익 창출의 도구로만 생각해 함부로 대하기 쉽다. 그런 회사의 노사 관계가 원만할 리 없다. 결국 앞, 즉 기업의 미래가 점점 어두워진다.

 위·아래·앞의 법칙은 거대 노동조합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집행부가 소아병적 이익에만 골몰하면 평조합원은 물론 노동운동의 바탕이 되는 대중적 지지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끝내는 자신들이 몸담은 기업의 미래와 노동운동 전체의 앞날이 보이지 않게 된다.

 지난해 이후 4분기 내리 총 2300억원의 적자가 났는데도 200% 성과급을 달라며 파업을 벌인 기아자동차 노조, 파업 중단을 촉구한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11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요구하고 나선 현대자동차 노조도 위만 봤지 아래와 앞은 보지 못하고 있다. 요즘 나는 현대·기아차 덕분에 길거리에 부쩍 늘어난 외제 자동차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사라졌다.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나만 생각이 변한 게 아니다.

 현대·기아차와 오버랩되는 회사가 일본의 닛산자동차다. 1933년 설립된 닛산자동차는 전후 일본 노동운동의 본거지였다. 계열사를 합쳐 23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일본 최대의 노조였기 때문이다. 53년 춘투(春鬪) 때 닛산차 노조는 ‘장바구니(market basket) 방식’에 따라 임금 협상안을 결정했다. 시장에서 필요한 만큼 물건을 집어 장바구니에 넣은 다음 그 가격에 맞춰 임금을 올리라고 사측에 요구하는 방식이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원조(元祖) 공산주의 방식이다. 이 때 반기를 든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측과의 협조 노선을 내세운 제2 노조를 설립했고, 격렬한 노노(勞勞) 투쟁 끝에 주도권을 장악했다. 60년대부터 24년간 닛산자동차그룹 노조연맹회장을 지내 ‘닛산의 천황’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시오지 이치로(鹽路一郞)도 주동자 중 하나였다.

 시오지 노조위원장은 경영진과 철저한 협조 체제를 유지했다. 66년 닛산차가 프린스 자동차를 합병할 때는 합병에 반대하는 프린스 자동차 노조를 와해시킴으로써 결정적으로 회사를 도왔다. 그의 권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됐다. 닛산의 임원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 요트에 젊은 여성을 태우고 다니며 “노동운동가라고 요트 타지 말란 법이 있는가”라고 뻐겼다. 밤이면 긴자(銀座)의 고급 술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노사가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끼고 돌아가는 사이에 닛산차는 도요타 자동차에 현격히 뒤처지고 말았다. 기업이 망조로 흐를 동안 시오지에게 반기를 든 경영진은 이시하라 다카시(石原俊·2003년 작고) 전 사장 정도였다. 이시하라는 “사장 업무의 6~7할은 노조 대책이었다”는 유명한 한탄을 남겼다. 시오지는 결국 86년 노조원들에게 불신임당한 후 닛산차 계열의 자그마한 여행사로 쫓겨났다. 다카스기 료(高杉良)의 『노동귀족』은 시오지를 주인공으로 한 실명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물론 현대·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노동 귀족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 조합장이 임단협 와중에 사측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마당이니 적어도 노란 신호등은 켜졌다고 본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유동우)이나 『불타는 눈물』(석정남)은 70년대 후반 많은 사람을 울린 현장노동자의 수기다. 지금 현대·기아차 노조 간부들이 진솔하게 수기를 쓴다면 『어느 돌멩이의 외침』에 가까울까, 아니면 『노동 귀족』의 닮은꼴일까. 그 중간 어디쯤이겠지만,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먼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