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못잡는 공직사회(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공직사회의 불안정과 일손을 못잡는 분위기가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정권교체기에는 으레 이런 현상이 생기는 법으로 치부하기엔 그 정도가 심하고 조만간 정상화될 것 같지도 않은데 문제가 있다. 지금이 얼마나 바쁜 시절인가. 필요한 조치가 필요한 시기에 나오지 못하면 바로 국민생활과 기업활동에 지장을 주고 곧 국익손실로 이어지는 판이다.
우리가 보기에 공직사회가 일손을 못잡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우선 세찬 사정바람에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고 각종 감사나 조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매사를 법대로,규정대로만 하려드는 소극주의·경직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사정은 해야 하고 행정은 법규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5년전,10년전에 만든 법규로는 현실의 빠른 변화를 다 규율할 수 없을뿐 아니라 관련법규가 없는 업무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판에 공무원들이 법규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무슨 일이 되겠는가.
또 새정부 출범후 단행된 대규모 인사이동도 행정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처마다 업무를 잘 모르는 신참자들이 많은데 따라 자연 결정과정이 늦어지고 팀웍조정도 잘 안되는 것이다. 게다가 벼락출세라 할까,낙하산식인사로 공직에 앉은 사람도 다수여서 내부에 위화감이 생기고 서로 눈치나 살피는 기관도 많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는 공직사회뿐 아니라 공기업·금융계 등도 마찬가지라는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공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생각할때 이들이 필요한 사업에 늑장을 부리고 대민서비스를 소홀히 하는 현상이 오래 지속되어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국민의 절대지지를 받고 있는 개혁작업이 한창인 이 시점에서 굳이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개혁속도를 늦추거나 대상을 축소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을 통해 행정능률이 올라가고 국민생활이 개선될 때 개혁은 성공하는 것이고 여기엔 공직사회의 적극적이고도 능률적인 업무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이처럼 공직사회가 자기 할일을 제대로 해내도록 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몇가지 조치가 시급하다고 본다.
첫째,대다수 공무원들에게 불필요한 사정공포심을 덜어주는 일이다. 사정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해 나가되 전체 공직사회가 추위를 타 얼어붙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공무원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방향·목표 또는 지침을 확실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 과거방식이나 지침은 사라졌는데도 그 자리에 아직 새것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빨리 정부차원,부처차원 또는 국차원의 지침이 확립돼야 한다.
끝으로 각종 제도와 법규의 정비도 시급하다고 본다. 변화된 현실과 새정부의 목표에 맞추어 현실화할 것은 현실화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우리는 정부가 빠른 속도로 이런 노력을 기울여 공직사회가 빨리 안정감있게 일하는 분위기가 되도록 거듭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