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32) 서울 동작을 열린우리당 백계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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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0대가 나설 차례입니다. 그동안 40대는 기성 정치인들과 386세대에 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낀 세대’였죠. 하지만 40대야말로 현실과 개혁을 조화롭게 양립시킬 수 있는 세력입니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 동작을에서 도전장을 낸 참여시대동작포럼 백계문(49)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40대 역할론’을 강조했다. 내년 총선도 40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세대보다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40대가 정치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 최근 일간지들이 앞다퉈 보도한 17대 총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도 가장 선호하는 세대로 4,50대를 꼽고 있다.

백씨는 475세대의 정치권 진입을 촉구하는 ‘포럼희망40’의 주축 멤버이기도 하다. ‘475세대’는 대략 45-54세, 70년대 학번, 50년대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조어.

“이 땅의 40대는 어린 시절 가난을 겪으며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못 해 본 세대입니다. 대학 시절엔 서슬 퍼런 유신독재에 맨몸으로 맞섰고, 80년대엔 일명 ‘넥타이부대’로 군부독재와 싸웠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는 채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386세대와는 다른 길을 걸었죠.”

그는 이 475세대가, 386이 정치권에 대거 유입되면서 소외감을 맛봤다고 주장했다.

“‘젊은피 수혈론’을 타고 ‘386바람’이 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코드 인사, 측근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386세대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거부감이 더 크다고 봐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죠.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깝습니다.”

▶백계문 참여시대동작포럼 이사장이 대학 3학년이 되던 1975년 서울대가 관악산으로 옮겼다. 그때부터 줄곧 그는 동작구 사당동에 살고 있다. 그의 지역구이기도 한 이곳을 그는 옛 이름인 ‘동재기’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던 시절처럼 이곳이 따뜻하고 정감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백씨는 “동작은 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당선되면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지역구 청소를 한다. 왼쪽 어깨띠 두른 사람이 백씨.

그는 70년대 학생운동권이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 서중·일고를 나온 그는 73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재학 시절, ‘유신철폐 요구 서울대생 시위’를 주도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고, 곧바로 제적 당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땐 합동수사본부(합수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생지옥 같았던 2달여 동안 그는 죽음의 공포와 싸웠다고 회고했다.

이후 80년대 내내 가난에 시달리며 노동운동·민주화운동에 매달렸다. 인천 양식기공장 노동자로, 지하철 건설현장 일용노동자로 땀을 쏟았다. 지금도 자신이 일했던 4호선 ‘신용산역’과 ‘혜화역’에 서면 감회가 새롭다고.

그는 서민의 대변자로 자처한다. 달동네를 전전하던 시절 몸에 밴 가난이 지금도 때때로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95년 9월 김근태 당시 민주당 의원(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끌던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는다. 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기획조정실 부실장을 맡았고, 97년 대선 땐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위 정세분석실 부실장으로 일했다. 그는 “‘정권교체’가 이 땅의 민주화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정치’도 민주화운동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 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기획실장·사무국장을 거쳐 민주당 서울시지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땐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서울 동작을 지구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대외협력위원과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실 기획위원을 맡고 있고, 2002년과 2003년 각각 광주민주유공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백씨는 정치개혁의 우선 과제로 ‘정치시장을 자유경쟁시장으로 바꿔내는 것’을 꼽았다.

“정치 서비스 시장이 불공정합니다. 정치 신인들에 대한 장벽이 너무 높아요. 선거를 치르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고, 그나마 줄을 잘 서야 공천이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정치는 선진화될 수 없습니다.‘돈 먹는 지구당’도 폐지해야 돼요. 돈 드는 선거야말로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근본 원인이예요.”

지역주의 정치를 추방하기 위해선 정책 대결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권자들에게 지역주의 선거 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각 정당이 정책을 차별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각 당의 정강정책을 보고 국회의원을 뽑도록 해야 돼요. 지금 어느 당이 경제성장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서민들의 민생안정을 더 중시하는 당이 어디죠?”

정치인의 덕목으로는 사(私)를 공(公)에 종속시킬 줄 아는 것을 첫손꼽았다.

“‘세상을 돌며 자신을 닦고 때를 만나 국사(國事)를 짊어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지금 그 때가 무르익었다고 느낍니다. 제가 사는 이곳을 ‘부강한 나라,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주 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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