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도 사정돌풍/“끝이 어디냐” 숨죽인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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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금경색” 걱정 말도 못꺼낼 판/검찰 「6공청산」 인상줄까 “조심”
최근 3명의 은행장을 연이어 물러나게하면서 일단락되는가 싶던 금융계에 대한 사정한파가 이번에는 아예 은행장의 비리에 대한 검찰의 본격수사로 번지면서 금융계를 더 큰 충격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과거 70년대의 율산사건,80년대의 이·장사건 등 큰 금융사고가 났을 때 시중은행자들이 줄줄이 구속된 적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새 정부의 개혁의지에 따라 과거의 「비리」가 들춰지면서 행장들이 연이어 물러나기는 처음있는 일이다.
금융당국도 전혀 모르게 검찰이 현직 은행장을 연행해가자 금융계는 사정의 여파가 과연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 허둥대고 있으며,자칫 이런 현상이 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심 키우고 있으나 내놓고 걱정을 했다가는 최근의 분위기에서 「수구파」로 몰릴 판이라 이제는 말도 못꺼내고 있다.
정작 검찰은 안영모 동화은행장의 연행이 그동안 언론에 계속 사정대상으로 거명됐던 6공 정치인이나 장·차관들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질까봐 매우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외의 결과 시사
김태정중수부장은 『이번 수사가 6공 실세였던 P모·L모 의원 등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이름을 거론할 경우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된다』면서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으나,『이번 연행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보자』며 답변을 피해 수사에 따라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안 행장의 연행으로 새 정부 출범이후 옷을 벗은 은행장은 벌써 4명이 됐다.
김준협 전서울신탁은행장이 3월18일 이병선 전보람은행장이 3월19일,박기진 전제일은행장이 지난 14일 잇따라 물러난 데 이어 안 행장이 검찰수사를 받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금융의 경색을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금융당국이 『우리가 알기로는 이제 은행장은 더이상 없다』는 부인성 확인을 그간 수차례 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한사람 더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행장들이 잇따라 옷을 벗자 금융계는 도대체 끝이 어디냐며 긴장하고 있다. 또 이러다가는 이미 물러난 은행장들도 단순히 「자진 사퇴」로 끝나고 말 것이냐에 대한 관심과 추측도 무성하다.
행장이 물러난 이들 은행들은 한달 넘게 은행장이 없는 수석전무의 행장대행체제를 꾸려 오고 있는데 중요한 경영현안이나 큰 규모의 중요한 대출을 책임있게 빨리 결정하지 못하는 등 후유증을 앓고 있기도 하다.
○무성한 소문·추측
또 은행의 일선 지점이나 대출창구에서도 예전의 「재량」이 졸지에 사라져 상당수의 중소기업 등은 당장 금융이 잘 안돌아가는 고통을 겪고 있기도 하다.
안 행장의 경질설은 금융계에 대한 사정시작과 함께 증시 등에서 계속 나돌았는데 주로 대출관련 비리와 금융계의 월계수회 인맥 제거설과 관련된 풍문이었다. 안 행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특정 정치세력의 거세 차원으로 시중에서 섣불리 해석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 행장은 6공때 박철언의원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계수회의 산행때 박 의원과 같이 등산을 하기도 했다고 금융계는 전한다.
안 행장은 「사정」과 인연(?)이 많다. 그는 지난 83년 한일은행장 재직시절에도 아웅산폭파사건 직후의 국상기간 특별사정과 관련,갑자기 물러났었다.
안 행장은 당시 행장에서 물러난 후 한일은행 자회사인 한일리스회장,한흥증권사장 등을 지내다가 지난 89년 동화은행 창립과 함께 초대 행장으로 옮겨 앉았으며 연임중이었다. 그는 현직 은행장중 나이가 가장 많은 「금융계의 선배」 격이었다.
황해도 해주태생인 안 행장은 동화은행 창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은행의 「산파」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홍성철씨·정원식 전국무총리 등 이북출신 고위인사와 두루두루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고,또 사촌동생인 안응모 전내무장관을 통해 6공 실세의원과도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꺾기많아 말썽도
동화은행은 이북5도민들의 주식공모로 대부분의 출자금을 마련해 지난 89년 9월5일 8번째 시중은행으로 문을 열었다. 은행개점 당시 1백17만3천8백49명의 개인주주와 1천5백61개 법인이 모두 2천억원의 자본금을 출자했다.
동화은행은 지난해 5백6억원의 업무이익(당기순이익은 2백88억원)을 올려 후발은행으로서는 영업을 비교적 잘한 편에 속했으나 은행감독원의 꺾기단속에 43억원이 적발돼 후발7개 시중은행중 92년 꺾기적발 1위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양재찬·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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