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에 비친 러시아상황/김석환 모스크바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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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두마디의 은어나 유행어가 백마디 말로도 설명이 어려운 그 나라의 정치·사회·경제상황을 전달하는 데 유용할 때가 있다.
요즘 러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와 유행어중 가장 빈전히 사용되는 「콘스티투트카」「프로스티투트카」「코룹치야」「누보 리슈」 등도 이런 점에서 러시아의 정치·사회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프로스티투트카는 영어의 프로스티튜트에서 들여온 말로 매추부를 의미한다.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매춘부들과 이들을 그냥 방치해두고 있는 정부·경찰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만을 대변해주는 단어로,오로지 돈만을 위해 신의나 의무 등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관리들의 행동을 『칵 프로스티투트카 젤라예트』(매춘부처럼 행동한다)라는 말로 비난한다.
또 콘스티투트카는 헌법을 의미하는 콘스티투치야와 매춘부를 의미하는 프로스티투트카를 합성,최근 위헌여부 판결을 무기로 때로는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를 왕래하는 발레리 조르킨 헌법재판소장의 행동을 풍자하는데 사용된다.
코룹치야는 부패를 의미하는 말로 프레스투플레니에(범죄)·훌리간(불량배)·마피아 등 단어와 함께 신문지상이나 일빈인들의 대화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단어다.
모스크바에서는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은 나라를 놓고 흥정하는 마피아,길거리에서 돈을 요구하며 교통단속을 하는 경찰은 훌리간,이런 풍조가 지배하는 러시아는 프레스투플레니에가 넘치는 나라라는 자조와 풍자가 넘치고 있다.
누보 리슈는 불어에서 나온 말로 졸부를 의미한다.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개혁의 진행에 따라 궁핌해지고 있는 데 반해 독일제 벤츠,스웨덴제 볼보 등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고 특급호텔을 드나들면서 달러를 물쓰듯 하는 마피아는 비웃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비즈네스 맨,감부르게르(햄버거) 등도 많이 사용되고 있고,모이카(세차)라는 새로운 의미의 단어도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모이카,모이카』를 외치며 모스크바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열살 안팎의 어린이들과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거리의 마피아를 일컫는 말렌키(조그만,작은이라는 의미) 비즈네스 맨,말렌키 마피아라는 단어도 사용 빈도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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