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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민간인 923명 사찰 1989년 '청명계획' 확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가 1989년 민간인 923명을 사찰한 내용을 담은 일명 '청명계획'의 문서철(네 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과거사위원회(군 과거사위.위원장 이해동 목사)는 24일 이런 내용을 담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청명계획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유보(89년 3월 20일)와 문익환 목사의 방북(89년 3월 25일)을 계기로 사회 혼란을 우려해 만들어졌으나 이후 민간인 사찰의 기초자료가 됐다.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은 90년 10월 4일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 사건'으로 세상에 처음 드러났다.

군 과거사위 조사에 따르면 보안사 3처는 89년 초 계엄령 상황에 대비, 좌익 성향의 주요 인사 923명의 검거와 처벌을 위한 청명계획을 입안했다. 또 이들 인사를 등급별로 구분한 '청명카드(체포카드)'를 만들었다. 청명계획은 이들 주요 인사의 인적사항, 예상 도주로와 은신처, 체포조, 유치 장소 등이 기재된 청명카드를 작성하고 계엄령 상황 시 이들을 검거.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실시된 '예비검속'과 유사하다.

청명카드는 '청명TF' 팀장인 3처 6과 윤모 계장과 예하 보안부대가 미행.탐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내사해 보고한 자료를 요약.정리하는 방식으로 작성됐다. 청명계획의 대상자는 당초 970여 명이었으나 청명TF 구성 과정에서 A급 109명, B급 315명, C급 499명 등 923명으로 줄었다. 이 계획은 3처장까지 보고됐다. 당시 최경조 참모장과 조남풍 사령관이 관여됐다는 진술이나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명계획은 89년 계엄령을 실시하지 않아 실행되지 않았다. 이후 민간인 사찰로 변질되면서 그 대상자는 1311명으로 늘어났다. 군 과거사위는 개인별 신상자료철(1만2100쪽)은 기무사에 보관돼 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 보관 자료에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빠져 있었다. 윤석양 이병이 폭로할 때 명단에 포함됐던 노무현.이강철.문동환.박현채 등 네 명의 신상 자료도 누락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보관된 사찰카드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찰번호가 295번이고 부산 보안부대 이모 상사가 미행과 망원(정보원), 탐문 채집 등의 방법으로 매월 1회 동향 보고와 분석 의견을 낸 것으로 돼 있다.

군 과거사위는 이날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진압과정에 대한 조사 결과도 발표했으나 유혈 사태를 초래한 발포 명령권자를 규명하지는 못했다. 다만 "전남대 소요에 대해 강력하게 다루도록 조치하라"는 계엄부사령관인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의 지시(보안사 '광주 사태 일일 속보철', 80년 5월 19일)가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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