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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의 한수 ①] “고지가 바로 앞, 조금만 참아”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무림에는 고수가 있고 경기장에는 선수가 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이들이 있다. 특정 분야를 개척해 남다른 경지를 이룩한 ‘달인’들이다. 그들은 각 분야의 베테랑으로 우리가 갖지 못한 세상을 보는 안목, 한 차원 높은 생존력을 갖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곳곳에서 눈에 띄지 않게 활동 중인 ‘재야의 달인’들을 ‘한 수 가르침’을 위해 찾아간다. 첫 달인은 역학을 인사·조직 분야에 접목해 샐러리맨들의 고민을 오랫동안 들어온 임성원(44) 현덕경영연구소장이다.


요즘 기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몸살을 앓고 있다. 드러낼 수 없어 그렇지 팀으로 표현되는 단위 조직들이 끙끙 앓고 있다. 작은 조직을 리드해야 하는 중간관리자들과 젊은 세대로 불리는 20~30대 초반 직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마찰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관리자들의 몸살은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 부하 직원들 때문에 일어난다. 리더의 말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는 일이 많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분노가 치밀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리더십이 없는 듯 여겨져 좌절감까지 든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젊은 부하 직원들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그들도 답답하다. 상사들이 합리적이지 못한 리더십으로 구태의연하게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몸살을 해결해 줄 누군가가 없다는 점이다. 팀워크가 생명인 조직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고민 알면 해결책이 보인다

“요즘 신입사원 면접을 해보면 젊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한눈에 보여요. 관심사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돈입니다. 잘살고 싶은 겁니다. 둘째는 전문성입니다. 안정적으로 먹고살 만한 생존수단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셋째는 건강입니다. 좀 특이하다 싶은데 어쨌든 몸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임성원 현덕경영연구소장의 말이다. 벤처기업 1세대인 휴맥스에서 임직원 교육 및 인사·조직 분야(HR) 컨설팅을 하고 있는 그는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롯데그룹에서 시작한 인사·조직 분야는 이제 그의 인생 터전이다. 현대전자-LG반도체 빅딜 때 HR분야를 맡는 등 다양한 컨설팅 이력은 여느 전문가와 같다. 하지만 그는 그와 비슷한 전문가들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주력무기’를 갖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갈고닦은 역학(사주)에 대한 축적된 내공이 그것이다.

임 소장은 이 주력무기를 HR분야는 물론 임직원들과의 상담에 적극 활용한다. 의외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덕분에 그의 머리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고민이 가득 담겨 있다. 600명이 넘는 휴맥스 임직원은 물론이고 각종 기업체 특강에서 만난 샐러리맨들이 많은 고민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젊은 직원들의 고민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담하다 보면 의외로 20~30대 초반의 직원이 많이 찾아옵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어요. 거의 대부분이 그래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돈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요.”

이들은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해 줄 1순위 해결책으로 돈을 꼽는다. 약속이나 한 듯 40세가 되기 전에 누구보다 돈을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점이 이전 세대들과 다른 점이다. 이전 세대들은 회사에서 승진하는 것이 성공이었고 성공을 하면 돈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더 이상 승진을 통한 재테크를 꿈꾸지 않는다. 전문성 제고로 몸값을 높이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여도 승진 자체에 무게를 두지는 않는다. 이들은 돈을 벌어야 성공했다고 여긴다.

“30대 중반 이상의 세대들과는 다른 점이 많아요. 특히 ‘속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돈을 벌고 싶다’는 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아주 드러내놓고 말해요. 그러면 제가 물어보죠. ‘돈을 어떻게 벌 것이냐’ 하고 말이죠. 그러면 우물쭈물합니다. 목표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겁니다.”

임 소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젊은 직원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휴맥스만이 아니다. 다른 직종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돈에 대한 이런 관심은 곧바로 경력(Career)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경력을 빨리 쌓아 몸값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이 안 될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조직(회사)이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을 게 뻔한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에 가도 경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상하 간의 마찰이 시작된다. 중간관리자는 위에서 내려온 다양한 지시를 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봉과 이직에 대한 높은 관심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젊은 직원들은 경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연봉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해서는 (인생의) 승부가 안 난다’고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 승부를 내려면(돈을 벌려면) 몸값을 높여야 하고 그래서 직장을 옮기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세상을 불안정하게 생각한다.

“대개 고민은 비슷해요.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고민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근무하면) 돈이 안 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 하고 싶지 않은 일, 경력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을 상사가 시키면 불안이 증폭되고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예전처럼 ‘회사가 너를 키워줄 것이다. 참고 기다려라’ 이런 말 두 번만 하면 떠나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만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어떻게 리드해야 할까

이는 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전 세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방법을 수용하고 학습하는 태도도 다르다.

“이전 세대들만 해도 입사하면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죠. 3C라는 말 아시죠? 커피(Coffee), 카피(Copy), 코피라는. 커피를 타고 복사하는 심부름을 하다 보면 코피가 터진다는 그 말 말입니다. 요즘엔 옛말이 됐죠. 일단 젊은 세대들이 수용하지 않거든요.”

이뿐만 아니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상사가 하자는 대로, 가자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다 보면 승진이 됐고 승진이 되면 먹고살 만했다. 해고 위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이전과 달리 집단적 의사결정 습관이 필요해졌어요. 부서별 목표 같은 것을 팀장 마음대로 정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곳이 많은데 그러면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간관리자급에서는 이미 습관화된 것이라 얼른 고치기도 힘들다는 데 문제가 있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선 목표 설정 주기를 바꿔야 합니다. 단위 부서(팀, 과)의 목표나 지향해야 할 것들을 장기적으로 하지 말고 1년 단위로 세우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목표를 부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공동의 목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죠. 흔히 상사들은 ‘이렇게 하면 2년 후에 잘될 것이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젊은 직원들은 ‘그때(2년 후)까지 당신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냐’고 속으로 말합니다. 리더를 불신하는 거죠.”

목표 등을 짧게 끊어 관리해야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조급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급증은 결과를 빨리 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는 상사의 역할이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입사하자마자 밤마다 술집 순례를 하면서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이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사라지면서 중간 상사 역할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인간적인 신뢰 관계가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중간 상사들이 효과적으로 부서를 이끌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두 번째 포인트는 피드백이다. 흔히 부부 문제를 다룰 때 남편들이 들어야 하는 말이 있다. ‘부인에게 사랑의 피드백을 하라’는 것이다. 남편들은 ‘꼭 그걸 말해야 아나?’라고 하지만, 아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확인이다.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젊은 직원들은 ‘자, 우리 가는 거야’ 같은 술자리 화합보다 직설적인 피드백을 원해요.”

젊은 직원들이 원하는 직설적인 피드백은 잘했으면 뭘 어떻게 얼마나 잘했는지, 못했으면 뭘 어떻게 못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에 대한 좌표를 알고 싶고 자신이 얼마나 인정 받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임 소장은 “이렇게 해서라도 젊은 직원들의 삶에 대한, 직장에 대한 조급함을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이번 일은 이런 목표를 세웠으니 이렇게 추진해야 하는데, 아마 이러저러하게 일을 한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생겨나는 갈등은 중간관리자들만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회사 차원의 정책이 필요해요. 시쳇말로 부려 먹어도 좋으니 회사가 나를 제대로 키워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일할 마음가짐은 있다는 얘깁니다. 문제는 불안감이죠. 이를 위해 회사는 5년 정도의 안정 기간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직업 안정도를 높이는 거죠. 만들어 놓으면 떠난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들이 떠나지 않게끔 좋은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회사에) 남는 시대가 아닙니다. 회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회사에) 남을 수 있도록 매력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젋은 직원들도 알아야 한다

임 소장은 젊은 직원들에게도 상하 간의 갈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돈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돈을 많이 벌어 하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이건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아소비입니다. 특히 준비나 노력을 등한시하면서 결과만 바라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예를 들면 ‘열심히 했는데 왜 몰라주느냐’고 하는 게 대표적이다. 객관적인 노력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만 알아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업무는 맡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나 도전도 회피한다. 상사가 알아줄 까닭이 없다.

“특히 일이 안 되면 누구누구 탓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데 스무 살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자기 책임입니다. 제 생각인데 20대에는 평생 할 수 있는 ‘나의 일’을 찾는 게 더 중요해요.”(다음 회에는 ‘역학으로 본 한국인의 조직성향’이 이어집니다.)

임성원 소장은…

대학 때부터 만세력 끼고 살아

휴맥스 변대규 사장과 임성원 소장은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서울대 재학 시절 한 지붕(하숙집) 아래 살았던 것이다. 4년 선배인 변 사장은 공대에 다녔고 임 소장은 경영학과 학생이었다. 임 소장은 그때부터 만세력을 끼고 살았다. 만세력이란 사주를 볼 때 사용하는 달력. 지금도 주머니 속에 늘 들어 있다. 반면 변 사장은 사주를 본 적도 가까이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임 소장을 ‘인정’한다. 한때 몇 년 동안 인사분야 자체를 현덕경영연구소에 아웃소싱했을 정도다.

그는 지금도 상담실을 찾는 이들에게 사주를 봐준다. 물론 철저하게 상담에 한한다.

“생각보다 효과가 커요. 대개 상담을 하는 이들은 고민, 그것도 부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럴 때 사주를 보면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어요. 일이 잘 안 되는 것이 남의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풀립니다. ‘내게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현실을 딛고 다른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임 소장은 심리학에서 제공하는 적성검사 툴(tool)보다 역학이 더 우수하다고 본다. 재미있는 것은 직원들이 그를 찾아와 상담하는 내용이 그들의 사주 속에 있다는 것. 사표를 내겠다는 직원의 사주를 보면 사업을 하기 위해 그러는 건지,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나타나는 까닭이다. 사업 운이 없는데도 상사와 갈등 때문에 회사를 나가 사업을 하겠다는 이들이 있으면 말린다. 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참고 기다려야 한다.

“역학은 단순히 길흉을 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알게 하는 힘이 됩니다. 내가 조직과 성향이 맞는지, 맞다면 어느 분야에 좋은지를 알게 해주는 거지요. 적성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서광원 기자[arase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 8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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