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리조나 드림』비평가 혹평 시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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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얼마전 국내에 개봉된『집시의 시간』으로 국내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유고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의 신작 『아리조나 드림』이 개봉되자마자 미국과 유럽의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고있다.
이 영화는 지난 90년 미국에 건너가 대학에서 강의를 맡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해 온 그의 4년만의 신작이자 첫 미국 제작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전부터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쿠스트리차가 이전에 보여준 「역사가 개인의 운명에 미치는 굴곡」에 대한 통찰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을 뿐아니라 미국문화에 대한 일관된 이해도 보여주지 못한 채 그야말로「모호한 환상담」에 그치고 말았다는 비평을 듣고있다. 게다가 흥행면에서도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조해 앞으로 쿠스트리차가 미국에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회의도 제기되고있다.
쿠스트리차가 대학에서 가르치던 제자가 쓴 대본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평범한 23세의 청년이 자동차 판매상인 삼촌과 약간 비정상적인 과부 등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게되는 내면적 성장을 그리고 있다. 과부는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원하고 삼촌도 자동차로 피라미드를 쌓아 그 위에 올라가기를 꿈꾼다. 모든 등장인물은 하늘을 향한 개인적인 몽상에 시달리는 기괴한 인물들로 설정돼 있다. 쿠스트리차 특유의 시적인 화면구성이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돋보여 가히「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만하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등장인물들의 기상천외한 꿈이 제대로 영상화되지 못한 것이 이 영화의 결정적인 한계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쿠스트리차가 미국에 온 이후 이질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고전을 겪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이라며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더구나 미국에 있으면서 조국 유고가 내란으로 고통을 겪는 비보에 접해야 했던 그의 입장은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임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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