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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아시아서 맥 못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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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아시아권 통화가치 일제 상승=20일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7일(913.8원) 이후 7개월여 만에 최저치(914.9원)를 기록했다. 그만큼 원화 가치가 올랐다는 의미다. 호주 달러도 최근 18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인도의 루피도 지난 5월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달러 대비 통화 가치도 최근 몇 년 새 꾸준한 상승세다.

 아시아권 통화 중엔 일본의 엔화만이 거의 유일하게 달러에 대해 약세다. 한국은행 외환시장팀 이은간 과장은 “경기회복에 따라 엔화가 약세를 보일 이유가 전혀 없다”며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일본의 이자율이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돈을 싸게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와 비슷한 이유로 늘고 있는 일본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엔화 약세의 요인이란 얘기다.

 ◆아시아에서 미국 영향력 약화=국가별 통화 가치의 상승 원인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은 조선 등 수출 업체가 대규모로 달러를 벌어들인 데다 외국인의 주식 매수, 은행 간 외환 거래 증가가 이유다. 호주는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 가격의 급등, 인도는 외국인 투자의 증가, 동남아시아는 무역수지 흑자와 정세 안정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아시아 국가의 대미 수출 의존도가 급격히 완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결같다. 92년 23.5%에 달했던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지난해 13.2%로 크게 줄었다. 아프리카·남미 등지로 수출을 다각화한 까닭이다. 싱가포르·태국·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대미 수출 비중도 같은 이유로 크게 줄었다.

 ◆오히려 미국이 눈치 볼 판=한·중·일을 포함한 12개 아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은 6월 말 현재 3조5200억 달러로 전달에 비해 577억 달러가 늘었다. 특히 세계 최대인 1조3000억 달러를 보유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선 미국도 긴장할 정도다. 게다가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서 무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 달러나 국채를 사 모으는 관행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중국의 경우 이미 가지고 있는 미국 국채를 팔진 않지만 추가로 들어오는 외환보유액을 유로국채 등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이 각국으로 확산되면 달러 값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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