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베리아의 야쿠트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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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샤머니즘 김태곤<경희대 중앙박물관장>
다른 곳에 사는 오윤(야쿠티아의 남자 샤먼)이 기다린다고 안내를 맡은 문화과장이 재촉했다. 늙은 오윤 부에곰과 마주앉아 차분히 조사하면 많은 자료가 나올 것 같았지만 문화과장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엔진 키도 없이 전선 두 가닥을 맞잡아매어 시동을 거는 낡은 자동차는 또다시 모래톱을 달리다가는 숲과 풀밭을 닥치는대로 한시간 가량 달려 조구틴 마을에 도착했다.
조구틴은 십여호가 듬성듬성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문화과장은 이 마을을 찾느라 도중에 여러번 길을 물었다.
오윤 막시맙스 아파나시에로비치는 그리 크지 않은 키에 피부가 검고 얼굴선이 굵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통통한 남자였다. 그는 몇번을 물어도 자기 나이가 몇인지 모른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자기 나이를 모른다더니 시베리아의 원주민들 중에도 자기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수의 개념이 없고 시간감각이 없어 굳이 그런 것을 따지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즉물적 의식변화…○>
막시맙스의 아버지도 오윤이었고 이름이 쉘라 니콜라이에비치이며 할아버지는 원주민의 부족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할아버지도 오윤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이 대목이 궁금해 몇번을 반복해 물어보았으나 언제나 동문서답만할 뿐이었다.
영어를 노어로, 노어를 다시 야쿠티아어로 바꾸는 3중 통역을 거쳐서야 내 말이 겨우 오윤에게 전달되고, 오윤의 말이 다시 그 역순의 과정을 거쳐 영어로 내게 돌아오는 절차때문에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자기의 나이조차도 모르는 위인이고 보니, 한마디를 물으면 묻는 말과는 관계없이 10분이고 20분이고 기분대로 떠벌려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는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날 오윤 막시맙스를 조사한 결과 그가 지신·숲신·화신·조모신을 섬기고 있고, 사람이 앓을 때 사람의 몸에서 떠난 영혼을 불러오고, 잃은 말을 되찾아오며, 사람의 앞날을 내다보는 등 점을 치는 것이 그의 주된 특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점치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조한」이라고 부르는 한뼘 가량 되는 나무개비의 한 끝에 뚫린 직경 한치가 좀 넘는 구멍에다 눈을 대고 주문을 외우며 원하는 것을 신에 알리면 이 조한의 구멍을 통해 원하는 것이 환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방법은 꿈을 통해 알고자하는 일들이 현몽한다는 것이었다. 후자의 것은 몽점인 셈인데, 몽점의 필요가 있을 때는 대낮에도 일부러 점을 치기 위해 깊이 잠든다는 것이다.
야쿠츠크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가 오후 8시 뜨기 때문에 신뢰가 가지 않는 막시맙스보다는 오전에 만난 늙은 오윤 부에곰을 정밀 조사하는 편이 나을 것같아 다시 부에곰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부에곰의 오윤복과 북·악기등을 정밀조사하고 싶었으나 돌아가야 할 배를 타느라 시간을 못냈다.
야쿠츠크의 호텔로 돌아왔으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십년을 별러 시베리아에서 처음 만난 샤먼을 완벽하게 조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며칠후 지프 1대를 전세내 배에 싣고 이에나강을 거슬러올라가 늙은 오윤 부에곰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이렇게 부에곰을 두번째 찾아간 것은 첫번 방문으로부터 5일 후인 8월18일이었다. 부에곰은 왜 또 왔느냐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한·중·일과 큰 차이…○
시간 여유가 있어 이번에는 호텔에서 빌려온 흰 침대 시트를 땅에 깔고 오윤복과 북등을모조리 촬영했다. 사진을 찍고 규격을 자로 재고 난 다음 용도와 의미 등을 하나하나 차분히 물어가며 조사할수 있었다.
부에곰이 사용하는 오윤복은 앞이 터지고 소매통이 즙아 우리의 두루마기와 흡사했다. 다만 양 소매통 밑에 새의 깃털을 상징하는 「고르순」이라는 순록 가죽을 2cm 너비로 길이 40cm되게 좁다랗게 썰어 단 술과, 무릎밑 단에도 역시 「구드루크 구르순」이라는 길이가 긴(59cm)술이 달려 있는 점이 달랐다.
부에곰은 이 오윤 복을 입고 북을 두들길 때 새처럼 날아 하늘 위에도 가고 지하계에도 가며 물고기처럼 헤엄쳐 수중계에도 간다고 했다.
새의 깃털을 상징하는 양 소매 밑에 달린 고르순과 무릎밑단에 달린「구드루크 구르순」이 이같은 기능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오윤복에는 비상을 도와주는 상징물들이 많이 달려 있다. 등 뒤에는 새의 깃털을 상징하는 아연판(2cm×12cm)로 된「게우트르 크한」이 2O개, 32개씩 두줄로 달려있고 게우트르 크한과 같은 크기와 재료로 만든 영혼을 상징하는 「쿠트 크한」 25개가 게우트르 크한 사이 층에 달려있다. 맨 밑층에는 게우트르 크한과 같은 크기와 재료로 만들어 피리를 상징하는 「에우레르크한」이 22개 달려 있다.
한편 동바지에는 청동으로 만든 작은 종 11개가 나란히 달려있고 밑에 해를 상징하는 둥근 동경과 달을 상징하는 반월경, 그리고 방울이 달려 있다.
오윤 복의 앞가슴에는 오리·물고기·동물들을 얇은 동판으로 12cm 길이로 정교하게 조각한 것이 7개 달려 있다. 원래는 10개였는데 3개가 떨어져나갔다. 이 동판의 오리와 동물들이 오윤이 섬기는 신들이다. 제의때 오윤은 바로 이 오리나 동물로 바뀌어 타계로 가는 것이다.
오윤이 섬기는 신들은 오윤복을 입었을때 앞가슴 오른쪽으로부터 ①구아갓스(흰 물오리) ②소부부르크흐(붕어)③트쿄호흐(물방개)④아우크흐(동물:한국명 미상)순으로 달려 있고, 오윤복 왼쪽 앞가슴에는⑤키르가리(동물:한국명미상)⑥문드(물고기:한국명미상)⑦바가(종류 미상)가 차례로 달려있다.
이처럼 다양한 상징물들이 달린 오윤복을 입고 북을 두들기며 춤을 추면서 몸을 심하게 흔들어대면 오윤복에 매달린 작은 종들과 방울들이 서로 맞부딪쳐 요란한 금속성이 나면서 오윤의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 오윤 자신이 직접 물오리나물고기 또는 동물로 바뀌어 천상계나 수중계·지하계로 가서 인간이 원하는 내용을 직접 알아온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이 오윤복은 우주적 비상의 상징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볼수 있다.
이렇게 오윤이 물오리나 물고기·동물로 바뀌는 즉물적 의식변화가 한국·중국·일본등지 무당의 강신현상과 다른 점이다. 이와 같은 즉물적 의식변화 부분이 바로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며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논란거리가 되고있다.
부에곰이 사용하는 북은 길이가 78cm, 폭이 65cm되는 타원형인데 한 면만 순록의 가죽을 입혔고 그 안쪽에는 작은방울이 24개나 달려 있다. 북채도 순록의 앞다리 뼈로 된 것이다. 이 외에 부에곰은 「제르켜켜잔」이라고 하는 길다란 원통형의 북이 5개, 「이레르흐자하흐」라는 여러개의 나무방울이 달린 악기를 2개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규모가 큰마을 축제가 열릴 때 쓰이던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오윤의 악기는 주로 타악기였다.
필자가 세번째로 만난 시베리아의 샤먼은 야쿠티아의 순타리에 사는 78세의 오윤 마트브에이 아파나시에브였다. 그를 만난 날은 오윤 부에곰을 다시 찾아가기 전날인 8월17일이었다. 오윤인 아파나시에브는 중키에 얼굴이 검은데다 마르고 눈이 유난스럽게도 번득거렸다.
아파나시에브는 16세때 까닭없이 눈앞이 안보이면서 정신을 잃어 주위의 모든 것을 생각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의식상실증에 걸렸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아파나시에브를 미쳤다고 했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먹고 자는 것조차 어떻게 했는지 알수 없었고, 다만 그의 몸이 다른 물체로 변신했던것만 어렴풋이 기억된다고 했다.
이런 증상이 4∼5년간 계속되었으며 이 기간에 그는 오윤이 되었다고 했다. 그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변신의 대상은 물오리·물고기·곰·늑대·뱀·나무등 이었다.

<○…북소리 맞춰 변신…○
아파나시에브가 입는 오윤복은 붉은 색의 천으로 만든 것인데 형태는 부에곰의 것과 같고 방울·종·새의 깃털을 상징하는 게우트르 크한이 단조로웠다.
그러면서도 그의 오윤복 앞가슴에는 백동판으로 물오리·물고기·곰·늑대·인형을 정교하게 조각해 붙였다.
이 조각들이 아파나시에브가 섬기는 신들이어서 제의때 그가 부르면 이 신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의 곁에 와서 대화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의 영혼이 직접 물오리나 물고기·곰등으로 바뀌어 천상계나 수중계·지하계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최고신의 뜻을 알아보거나, 환자의 몸에서 떠나간 영혼을 불러와 병을 고치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신들의 형상은 물오리나 곰등의 형상 그대로 나타나는데, 형체가 없어 공기처럼 투명하고 주로 제의때 볼 수 있다고 했다.
시베리아의 샤먼들을 만난 충격은 좀처럼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12월 겨울방학때 런던을 경유해 다시 시베리아의 야쿠티아 땅을 밟았다.
마안디에 사는 늙은 오윤 부에곰을 또다시 찾아간 것은 12월27일이었다. 지난 8월에 갔을 때와는 달리 집 주위가 온통 눈과 얼음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나를 흥분시켰던 오윤 제단에 나무로 깎아 앉힌 물오리 9마리도 모두 하얗게 눈에 덮여 있었다. 부에곰은 뜰앞 호수에 떠있는 얼음덩어리를 집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미진했던 부분을 보충조사하며, 부에곰에게 사후에 이 오윤복을 비롯한 북·악기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부에곰은 북채를 손에 쥐고 창너머로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발길을 돌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윤의 위대한 목소리는 이제 이 땅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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