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간 검은 돈」추적이 열쇠/경원대 수사 어떻게 돼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압수한 자료들도 결정적 증거 못돼/관련자들은 혐의 부인… 시효도 만료/사법처리보다 “도덕적 매장”수준서 그칠지도
경원대 입시부정사건 수사는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부도덕성에 대한 응징과 왜곡된 입시관리에 대한 사법처리라는 명분을 갖고 출발했으나 수사초기부터 이같은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확보에 난항을 겪고있다.
이는 수사착수 이전에 충분한 자료확보 과정을 갖지못한데다 학교 관계자의 진정서만 확보한 상태에서 사정을 추진하는 정치권의 분위기에 따라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2월 광운대 입시부정 사건때처럼 수험생과 학부형 등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준까지 비리 관계자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한 수사가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진정서에 연루된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도덕적 흠집내기」수준에서 수사가 머무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초 경원학원의 학사관리와 재단운영을 둘러싸고 지난해부터 갖가지 비리관련 진정과 투서가 각 사정기관과 언론사에 접수됐었으나 진정내용이 대부분 과장된데다 일부는 혐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판단돼 사직당국의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던 사실도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10일 경찰청에 이 학교 입시관련 비리와 관계자에 대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한 성역 없는 수사를 강력하게 지시,경찰이 이를 위한 증거확보 및 관련자 색출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이다.
우선 경찰이 수사대상으로 삼고있는 88학년도 입시부정 사건의 주요관계자로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적용되는 법조항은 업무방해죄이나 이 죄의 공소시효인 5년이 이미 경과한 상태여서 정치권이 학사비리에 단호한 사법대응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는 느낌도 지을 수 없게 돼있다.
이 부분은 특히 소추권이 없는 사건은 수사기관이 수사대상으로 삼지않는다는 형사소송법 정신에도 어긋날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 관계자에게 적용되는 업무방해죄에는 추징이 불가능하고 배임죄의 적용도 안돼 수사배경이 비리를 저지른 재단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의 확보에도 미흡한 실정이다.
또 경찰이 사건수사 3일이 지난 12일 현재 가장 곤란을 겪고있는 부분은 입시 관련자료 확보부분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입시관련자료 보관기간을 92학년도부터 4년으로 규정해놓고 있으나 이는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침에 불과하고 이 지침을 어길 경우에도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만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입시비리 혐의가 있는 대학의 경우에도 심하게 말하면 증거자료인 입시관계 자료를 파기하면 얼마든지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이 있는 셈이다.
교육부의 이 지침은 89년까지는 모호했으며 90년은 2년,91년은 3년,92년부터는 4년으로 보관기간이 연장됐을뿐 그동안 여러차례 연례행사처럼 입시관련 비리가 계속돼 왔으나 이같은 비리척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던 것도 입시비리에 대한 방치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됐다.
경찰은 그러나 92,93학년도 입시 관련자료중 수험생이 작성한 답안지인 OMR카드와 학교측이 작성한 조작혐의가 있는 수험생 사정자료인 마그네틱 릴테이프를 확보,이들 두 자료의 비교를 통한 비리관련자 색출작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12일 현재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이 대학 교수 등 비리 관련 혐의자들은 계속 관련혐의를 완강하게 부인,결국 자료를 통한 비리색출과 재단의 경리장부 분석과정에서 입시때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돈이 밝혀져야 수사가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군장성·고위공직자들이 다수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88학년도 입시부정 부분은 공소시효가 만료된데다 이를 뒷받침할만한 입시 관련자료가 단 한건도 없어 경찰은 당사자와 학교측의 비리시인이라는 실날같은 부분에 기대를 걸고있는 실정이다.<김우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