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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좁아져 흔들리는 J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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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표위원 임기명시 등 안돼 설왕설래/「개혁 속도조절론」 당내반발로 “입조심”
JP(김종필 민자당대표위원)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JP 본인이나 측근들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한 주변에서 공연히 흔들어대기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대표 본인은 요즘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그는 최근 재산공개 파문속에 열린 한 조찬모임에서 『바람이 불 때는 잠잠해질 때까지 엎드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가끔 『언론이 내가 하는 말의 참뜻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자신이 거론한 「속도조절론」이 개혁에 대한 수구세력의 반발을 대변하는 양 비치자 그는 더욱 입조심을 하고 있다.
○“바람불면 엎드려야”
본래 직설적인 화법을 즐기지 않는 그의 말은 이 때문에 더욱 선문답을 닮아가는 것같다. 예를 들면 지난 2일 기자들을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지. 「요새 젊은 애들은 못쓰겠다. 여자 꽁무니나 따라다니고,예절없고,세상 고마운 것 모르고. 저런 젊은이들에게 과연 우리 후세를 맡길 수 있겠나」라고. 그렇지만 소크라테스 이후에도 무난히 2천년이 흘렀어. 세상은 그런 거야. 무엇이고 한번에 되는 일은 없어요.』
당내 일부 의원들이 뒷전에서 노골적으로 『더 추한 꼴을 보기 전에 이제 국회의장이나 한번 하고 끝내셔야 되지 않는가』고 수군대는 와중에도 김 대표는 묵묵히 당무를 주재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청와대 주례회동을 갖고 있다. 최형우사무총장이 수시로 김 대통령과 「직거래」하는 것을 번연히 알지만 그에 대한 불만표명은 일절 없다. 최 총장도 최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눈에 띄게 김 대표를 모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재산공개 파문때 직격탄을 맞은 유학성의원이 김 대표를 찾아와 의원직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내일 사퇴서를 갖고 오겠다』고 했을 때 김 대표는 『그러지 말고 지금 당장 사퇴서를 쓰고 기자실에 가서 알리라』고 충고했다. 정훈1기 출신으로 김 대표의 육사8기들과 동기로 분류되는 유 의원은 김 대표의 말을 선뜻 따랐다고 한다. 한 측근은 이 예를 들며 『당내에 김 대표만한 경륜과 권위를 갖고 있는 분이 누가 있는가』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JP만의 「역할」을 강조했다.
○총장 직거래에 함구
김 대표는 9일 열린 민자당 상무회의에서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그는 10일 아침 기자들과 만나 『개정된 당헌에 대표위원의 임기조항이 빠진 것을 두고 나의 위상이 격하됐느니 아니니 하고 쓸데없이 따지고들 있다』고 모처럼 불만을 털어 놓았다. 『3부요인이라는 대법원장이나 국회의장도 현행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는 대통령(집권당총재)이 국회의 동의(선출) 과정을 전제로 사실상 임명하고 있다. 그래도 대법원장·국회의장의 위상문제와 관련해 뒷말이 없다. 국민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기조항이 있고 없고는 무의미하다. 검찰총장·육군참모총장도 명복상으로는 임기가 있다. 그러나 통치권자가 그만 두라면 그만 두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이번 당헌개정안이 나왔을 때 흔쾌히 수용했었다. 격하운운은 말이 안된다.』
개정된 민자당 당헌은 3당합당(90년)의 산물인 최고위원제를 없애고 총재 1인의 단일지도체제를 확고히 했다. 종전의 대표최고위원은 총재와 당무를 「협의」 하도록 돼 있었으나 새 당헌은 「대표위원은 총재의 명을 받아 당무를 총괄하고 지휘·감독한다」고 상명하복관계를 못박아 놓았다. 대표의 임기규정(2년)을 폐지한 대신 총재가 대표를 임명할 때는 전당대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국회의장설에 발끈
따지고 보면 김영삼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상 당내 2인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협의니 상명하복이니 하는 자구를 들먹이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만큼 절대적이다. 결국 당헌은 김 대표의 위상을 설명하는 조그만 단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내의 김 대표측도,김 대표입장이 아닌 측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금 김 대표를 받쳐주는 기둥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당헌상 당내 2인자라는 점과 대통령과의 주례회동(매주 목요일),그리고 지난해 경선당시 김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받아낸 「사후보장 약속」 등이 있다. 김 대통령도 9일 상무회의연설에서 『김 대표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신한국을 향해 달리자』고 말함으로써 다시 신임장을 내려 주었다.
김 대표 본인은 최근 「국회의장」설이 나왔을 때 매우 불쾌해 했을 정도로 자신의 역할과 장래에 나름대로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믿음이 정치적인 재기로 꽃피게 될지,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굽은 소나무가 선산지키는」 역할정도는 맡게 될지 저으기 주목된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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