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정부군 "협상 중엔 작전 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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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민간 유엔'이라고 불리는 '둘로스' 호의 외국 선교사들이 22일 부산 크루즈터미널에서 탈레반에 의해 피랍된 한국인들의 석방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비영리 국제구호단체인 '굿 북스 포 올(Good Books for All)'이 운영하는 둘로스호는 1914년에 건조된 세계 최고령 여객선으로 50여 개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승선해 전 세계를 돌며 서적 판매와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6월 25일 포항으로 입항해 현재 부산항에 머물고 있는 둘로스호는 목포와 인천항을 차례로 방문한 뒤 8월 28일 홍콩으로 떠날 예정이다.[부산=송봉근 기자]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한국인 23명 억류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과 아프간 정부는 다양한 협상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협상보다 탈레반 소탕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21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알카에다와 탈레반 소탕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해, 이번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은 소탕 대상이지 결코 협상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알카에다 잔당이 최근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지대에서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 "현지 주 정부와 부족 지도자들은 알카에다나 탈레반을 쫓아낼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지속적인 소탕 작전 전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등에서 자국인이 납치됐을 때도 "납치를 더욱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인질이 희생되더라도 납치범들과는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발생한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원칙 고수와 동맹국 국민 보호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는 것이다.

다른 주요 국가도 이번 납치 사건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특히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선례를 남길 경우 더 많은 납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미국.영국 중심의 논리를 의식한 듯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

BBC 인터넷판은 이날 "20여 명의 외국인이 한꺼번에 납치된 것은 2001년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가장 큰 규모"라며 "사건이 발생한 남부 가즈니주에서 부족 원로들이 납치범과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22일 "한국 사절단과의 대화를 거친 뒤 향후 계획을 결정하겠다"며 작전을 유보한 상태다. 한국인 납치사건이 발생한 가즈니주의 알리 샤 아마드자이 경찰국장은 21일 "군과 경찰이 한국인 억류 추정 지점을 포위하고 있으나 협상 도중 인질들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이나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병력이 인질을 구출하려고 시도할 경우 인질을 살해할 수 있다고 탈레반 측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1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인 등 납치사건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아프간 정부가 깊은 관심을 갖고 조기 석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문제의 조기 해결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으며, 아프간 정부 내에 대책반을 설치했다"고 밝히고 "납치 단체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중동 평화회담에 참석한 뒤 유엔본부로 돌아온 반 총장은 "한국인 피랍 소식을 리스본에서 듣고 잘메이 칼릴자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에게 '미국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칼릴자드 대사는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와 나토 사령관에게 연락해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엔본부=남정호 특파원, 서울=박소영 기자<namjh@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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