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1차 살해 시한 2시간 앞두고, 노 대통령 "CNN 기자 불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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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는 22일 백종천 안보실장이 주재하는 안보정책 조정회의가 두 번 열렸다. 송민순 외교.김장수 국방.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임상규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인 피랍 사건이 발생한 뒤 관계 부처 장관들로 구성된 안보정책 조정회의가 열린 것만도 벌써 네 차례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선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가 피랍 사실을 확인한 지 하루 만인 21일 오후 2시30분 TV로 생중계되는 특별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된 이 발표문에는 사실상 납치 단체에 보내는 메시지가 담겼다. 노 대통령은 "납치 단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인명을 해쳐선 안 된다" "우리 정부는 조속한 석방을 위해 관련된 사람들과 성의를 다해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명시적으로 "협상"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정부가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셈이다. 청와대는 회견장에 CNN 기자까지 불러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시켰다.

노 대통령은 두 시간 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 차원의 협조도 요청했다. 최근 들어 한국인 납치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까지 발표한 건 처음이다. 정부는 그동안 '납치 단체와 직접 협상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 때문에 그런 원칙이 무너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긴급하고 현존하는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외신을 통해 전달되도록 가장 빠르고 높은 수준의 대응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측도 이런 의견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노 대통령의 '이례적인 대응'에는 2004년 발생한 김선일씨 사건 때 '협상 불가 방침'만 강조하다가 인명 구출에 실패했던 경험이 작용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노 대통령의 대응 자세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메르켈 총리는 21일 탈레반이 제시한 시한을 앞두고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 벌이고 있는 노력들을 중단할 수 없다"며 '철군 불가'입장을 밝혔다. 이후 탈레반은 "독일 인질 2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휴일인 22일 청와대 관저에서 안보정책 조정회의 결과를 보고받으며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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