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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U 방한 경기 열리던 그날 … 편협한 민족주의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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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FC 서울을 4-0으로 대파한 20일 서울 상암동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가 끝난 뒤에도 젊은 팬 상당수가 자리를 뜨지 않고 회복운동을 하는 맨U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국 팀 서울은 잉글랜드 팀 맨U에 전반에만 세 골을 허용하는 등 지리멸렬한 경기를 했지만 예전 같은 야유는 없었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맨U 선수들에게 보내는 환호만 있었다.

'대한민국 영 파워'에게 편협한 민족주의는 없었다. 맨U는 21일 출국했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탈(脫)민족주의'의 확인이었다.

2005년 7월 아르헨티나의 명문팀 보카 주니어스가 방한했다. 역시 FC 서울과 친선경기를 했다. FC 서울의 서포터스든 아니든 관계없이 관중은 모두 "서울"을 연호했다. '한국 팀=우리 팀'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국내 신문의 스포츠면 헤드라인 대부분도 'FC 서울, 보카 주니어스에 석패'였다.

그러나 2007년 7월 이 도식이 깨졌다.

이날 경기에 맨U의 박지성은 출전하지 않았다. 맨U를 한국과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닫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경기는 100% 외국선수로 구성된 맨U와 서울을 연고지로 한 한국 팀이 맞붙은 경기였다.

그러나 젊은 축구팬들은 전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병지가 지키는 골문에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와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가 골 세례를 퍼붓는데도 박수를 보냈다. 맨U의 골문을 지킨 에드윈 판데르사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한국을 5-0으로 대파한 네덜란드의 골키퍼였다. 예전 같으면 "한국의 자존심" 등의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아예 들을 수조차 없었다.

경기 도중 전광판 화면에 알렉스 퍼거슨 맨U 감독의 얼굴이 비치자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를 질렀다. 터키 출신인 셰놀 귀네슈 서울 감독이 소개될 때도 열렬한 환영의 박수가 나왔다. 맨U 선수의 활약뿐 아니라, 서울의 이청용이 큰 페인트 모션으로 맨U의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미카엘 실베스트르를 넘어뜨리는 장면에서도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FC 서울을 응원하던 서울의 서포터스도 "이벤트 경기였고 즐겁게 응원했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축구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장원재 숭실대 교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승패보다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번 맨U 방한 경기는 한국 젊은 세대의 '탈민족주의'성향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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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 골 먹어도 환호 #승패보다 경기 자체 즐겨 #젊은 세대 문화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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